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신용등급 강등 대란이 예고되고 있다. 국내 신용평가업계(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NICE신용평가)가 올해도 적잖은 크레디트 이슈로 지난해처럼 오는 3월부터 정기 신용평가를 실시한다는 방침을 세우자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통상 정기 신용평가는 6월 한달 동안 진행되는 것이 관례지만 유동성 리스크가 불거진 대기업 계열사가 급증하는 탓에 몇 개월씩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연초 동부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대기업 리스크가 한층 고조되면서 도미노식 신용등급 강등이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지난해 신평사를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검사를 실시하면서 기업 신용등급 현실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또 올 상반기부터 기업 회사채의 독자신용등급제도 시행도 추진되면서 대기업 계열사 신용등급의 연쇄 강등 가능성도 예고하고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신용평가업계는 오는 3월부터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대기업에 대해 대대적 신용평가 작업에 돌입한다. 지속적 경영난을 겪고 있는 건설, 철강, 조선 등의 업종 외에 최근 유가가 급락하면서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석유화학, 정유, 태양광 업체의 신용도를 재평가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신평사 관계자는 “한계기업으로 분류된다는 것은 구조조정에 따라 직접적 관계사는 물론이고 여타 기업의 유동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특히 채권은행의 건전성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쳐 올해 정기 신용평가 초점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대기업 계열의 신용도 재평가에 있다”고 말했다. 통상적 평가대상인 사업 안정성이나 실적 변동성에 집중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지난해 동부, 현대, 한진, 두산, 대성그룹에서만 17개 계열사의 신용등급이 하락했다. 동부와 현대그룹 계열은 투기등급으로 강등됐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 말 올해 26개 업종별 신용등급 전망에서 반도체만 긍정적이고 나머지 업종들은 둔화, 부진 등 부정적 평가를 내놨다. 특히 철강, 석유화학, 정유, 건설업은 지난해보다 경영환경이 크게 나빠질 것으로 전망했다.
신용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하는 독자신용등급제도 역시 도미노식 신용등급 강등을 예고한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우량 계열사의 지원 가능성을 감안한 최종 신용등급과 함께 해당 회사 자체의 독자신용등급이 표기된다.
문제는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회사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올해 만기 도래하는 무보증 회사채 규모는 약 46조원대로 신용등급 A급 이하인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만 21조417억원으로 전체의 45%에 달한다. 당장 회사채 신속인수제로 연명해 온 동부, 한진, 현대그룹 등 한계기업들의 자금조달에 빨간불이 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