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가석방이 물 건너 간 데는 여론의 눈치만 보는 정치권의 책임이 컸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9월 기업인 가석방에 관해 처음으로 운을 뗀 이후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업인도 사면·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힘을 실으면서 기업인 가석방은 급물살을 타는 듯 했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적극 검토해야 한다며 부추겼다.
그러나 아직까지 재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의 벽을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다. 야당과 진보성향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재벌 봐주기’라는 비판 여론이 불거지자 상황은 급반전됐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이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작년 12월 29~3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1.2%가 가석방에 반대했다. KBS가 다음 날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발표한 조사에서도 반대 의견이 66.3%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2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가석방 문제와 관련해) 기업인이라고 해서 특혜를 받는 것도 안 되겠지만, 기업인이라고 해서 역차별을 받아서도 안 된다”고 했다. 공격적인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재벌 총수의 결단이 필수적이다. 박 대통령의 이런 발언도 국민정서와 경제 살리기 사이에서 고민이 있었음을 방증하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재계는 기대 반, 아쉬움 반의 마음으로 정부와 새누리당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기업인 가석방을 무산시키는 데 결정적 쐐기를 박은 건 그 누구도 아닌 새누리당이었다. 김무성 대표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형기 80% 이상을 채워야 한다는 법무부 준칙을 깨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며 “현재로서는 어려운 이야기”라고 했다. 이로써 ‘기업인 2~3월 가석방론’은 완전히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결과적으로 국민 혼란만 가중시킨 셈이 됐다.
최운열 서강대 교수는 “과거와 달리 국민들은 의식수준이 높아져 법과 원칙에 따른 가석방, 사면복권을 원한다”며 “정치권도 원칙을 똑바로 세워야지, 국민의 눈치를 보면서 말을 바꿔 혼선을 가중시켜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