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년 전부터 주민등록번호 폐지를 위해 뛰고 있는 학자다.
그는 주민등록번호의 근본적인 문제점부터 지적했다.
한 교수는 “우리나라 주민 번호는 등장배경부터 간첩, 불순분자 등을 색출하고 주민 통제를 위해 만들어졌다”면서 “만들어질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지만 최근 정보화가 되다 보니 모든 데이터베이스의 식별자로 작용해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하고 휴대전화 개통 시 본인 확인을 하도록 돼 있는 정보화된 한국 사회에서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정보에 접근하는 만능열쇠다.
때문에 주민등록번호 유출 및 도용을 방지하는 것은 프라이버시 보호의 핵심이라는 것이 한 교수의 생각이다. 문제는 주민등록번호 제도 도입 이후 이미 수십년이 흐르는 동안 그것이 한국인의 일상과 긴밀하게 결합해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 주민등록번호의 대체제로 제기되는 ‘아이핀’이나 ‘휴대전화 인증제’에 대해 한 교수는 “아이핀이나 휴대전화 인증제 역시 가입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기 때문에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면서 “안전행정부에서 새로운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한다고 하지만 기술의 문제가 아닌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보노출의 위험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유출이 해킹이 아닌 보안관리자 즉 사람을 통해서 유출된 만큼 이번 기회에 불필요한 통제의 도구이자 정보유출의 통로가 되는 주민등록번호를 없애자는 것이다.
하지만 주민등록번호의 폐지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불편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에 한 교수는 “최근 카드사 유출 사태만 보더라도 정보 유출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국민들의 불안감을 생각하면 주민등록폐지로 인한 비용과 불편함은 감수할 만한 수준”이라면서 “주민등록번호를 없앨 수 없다면 최소한 주민등록번호를 바꿀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민등록번호가 사라질 경우 행정업무의 불편함을 우려하는 의견에 한 교수는 “아무 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단언했다.
한 교수는 “주민등록번호 제도 자체를 폐지하고 각각의 데이터베이스는 그에 고유한 번호체계를 만들어 사용하면 된다”면서 “국방부가 군번으로 군사업무를 처리하듯 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번호를, 국세청은 납세자번호를 만들어 각각 관리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행정 혼란을 막기 위해 번호 변경 허용 등의 방식으로 개선해야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폐지가 정답이다”며 “이 경우 국민들에게는 개인정보의 소중함을 부각시켜 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국가·기업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각종 감시체계를 투입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계기를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