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은 디딤돌, 88은 도약대’
86 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개최에 연달아 성공하자 국내 전국 곳곳에는 이 같은 표어가 내걸렸다. 이로부터 25년 여가 흐른 현재, 한국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국이다. 소치동계올림픽을 눈 앞에 둔 상황에서 당시의 표어는 ‘2010은 디딤돌, 2014는 도약대’로 바꿔도 좋을법 하다.
한국은 2010 밴쿠버 대회에서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로 역대 동계올림픽 참가 역사상 최고 성적을 올렸다.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다. 금메달 6개 중 4개를 쇼트트랙이 아닌 다른 종목에서 딴 것이다.
역대 동계올림픽을 통해 한국이 따낸 금메달은 총 23개다. 1948년 생모리츠(스위스) 동계올림픽에 한국 국기를 들고 처음으로 참가한 이래 1992년 알베르빌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김기훈이 첫 금메달을 땄고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캐나다) 피겨스케이팅에서 꼭 23번째 금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밴쿠버 대회를 빼면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이탈리아)까지 한국이 획득한 총 17개의 금메달은 모두 쇼트트랙이었다. 은메달과 동메달까지 범위를 넓혀도 밴쿠버 대회 이전까지 얻은 31개의 메달 중(금 17·은 7·동 7개) 중 쇼트트랙 이외의 종목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나온 은메달 1개와 동메달 1개가 전부였다. 밴쿠버 대회를 통해 심각한 메달 불균형을 해소한 것이다. 밴쿠버 대회를 한국 동계올림픽 출전사의 전환점으로 보는 이유는 바로 이 같은 메달 획득 종목의 다양성에 기인한다.
소치동계올림픽을 끝으로 ‘피겨퀸’ 김연아의 모습을 더 이상 올림픽에서는 볼 수 없다. 한국에서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방상아 SBS 해설위원은 “아직까지 피겨에 대한 지원과 뒷받침은 많지 않다”고 강조하며 홈에서 열리는 평창 대회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해야 할 것임을 시사했다. 포스트 김연아에 대해서는 “소치 대회에 출전하는 박소연과 김해진은 장단점이 뚜렷하다”고 전제하며 “소치올림픽 출전은 평창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수들에게 매우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의견을 밝혔다. “올림픽 같은 큰 무대를 경험하는 것은 선수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는 말도 덧붙였다.
피겨에서 김연아가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해왔다면 스피드스케이팅은 밴쿠버에서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 등이 무더기로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을 일약 스피드스케이팅 강국으로 이끌었다. 2013년 세계신기록만 네 차례 작성한 이상화는 올림픽 2연패에 근접해 있다는 평이다. 모태범 역시 지난 해 초반 부진을 겪었지만 연말로 접어들며 컨디션을 회복해 역시 올림픽 2연패 가능성을 높였다.
스피드스케이팅이 피겨보다 낙관적인 것은 어느 한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거리 스타 이승훈을 필두로 한 팀 추월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에 근접해 있어 메달권 진입이 유력하다. 이승훈 역시 “개인 성적에서 크라머(네덜란드)를 꺾을 가능성보다 팀 추월에서 네덜란드를 이길 확률이 더 높다”고 전하며 “소치에서 이변이 일어난다면 팀 추월일 것”으로 예상했다.
밴쿠버 대회를 통해 한국은 명실공히 동계스포츠 강국으로 떠올랐다. 실제로 주요 외신들은 “한국이 밴쿠버올림픽을 통해 동계스포츠 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동계올림픽에서 한국국기를 보는 일은 이제 익숙하다” 등과 같은 반응을 나타냈다. 당시 대회 이후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아시아 동계스포츠의 맹주는 더 이상 일본이 아닌 한국”이라는 헤드라인을 뽑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은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 외에도 봅슬레이, 스켈레톤, 컬링, 프리스타일 등에서도 세계 정상권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당장 소치에서의 성과는 크지 않을 수 있어도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이다.
밴쿠버에서 한국은 종합성적 5위에 오르며 동계스포츠 강국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당시의 성과가 일회성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소치 대회 이후에는 안방에서 올림픽을 개최하기 때문이다. 2010년 디딤돌을 잘 놓은 한국은 도약대인 2014 소치 올림픽대회를 통해 동계스포츠 강국의 위치를 다지려 하고 있다. 소치를 진정한 도약대로 삼을 수 있느냐는 평창에서의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소치올림픽이 우리에게 도전과 희망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