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윤창중’이라는 이름 석자로 온 나라가 들썩인지 두 달여가 넘었다. 정부 측 방미 인사로서 개인의 추문을 넘는 파장을 불러왔고, 이후 정부와의 진실공방으로 번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으로 많은 국민들은 정부가 강조해왔던 국격이 눈앞에서 무너지는 상실감까지 맛봐야 했다.
이 글은 청와대의 발표와 지금까지의 언론보도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논픽션(Non-Fiction)’이다. 단, 아직 공식적인 수사결과가 발표되지 않은 상황인 만큼 내용 중 일부는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먼저 밝힌다.
◇박 대통령은 왜 29시간 동안 몰랐나… 美 교포사회는 빠르게 확산
5월8일 오후 3시 앤드루 공군기지. 윤창중 대변인이 비행기에 몸을 실은 시각, 박근혜 대통령은 워싱턴 일정을 마치고 다음 순방지인 로스앤젤레스(LA)로 향하기 위해 전용기에 탑승했다.
1시간 가량 지났을 쯤 박 대통령을 수행하기 위해 전용기에 타고 있던 최영진 주미 대사 앞으로 대사관의 긴급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뭐라고요?”
전화를 받은 최 대사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최 대사는 다른 방미 수행단을 소집하기 시작했다. 전용기 안에 있던 이남기 수석과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윤병세 외교부 장관, 최영진 주미대사,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전광삼 홍보수석실 선임행정관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무슨 일이에요?”
“지금 윤창중 대변인에 대한 성추행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고 합니다. 미국 국무부 측에서 윤창중 대변인이 미국에 다시 오게 될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면서 미국 시민권자인 피해 여성에 대해 접촉하거나 압력을 가하지 말라고 전해 왔습니다.”
방미 수행단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저, 사실은 말입니다.”
미리 사건을 알고 있었던 이남기 홍보수석이 입을 열었다.
LA로 향하는 5시간 동안 전용기 안에서는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다. 성추행 사건을 처음 전달받은 전광삼 수석 행정관도 상황 설명을 이어갔다. 사태의 현황을 들으면서 방미 수행단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래서 지금 윤 대변인이 한국으로 가는 중이라고요? 당장 서울로 연락하세요. 윤 대변인이 귀국하는 대로 조사에 들어가세요.”
방미 수행단은 서울로 위성전화를 걸었다.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실은 윤 대변인이 귀국하는 즉시 조사에 착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런데 대통령께 보고는 드렸습니까?”
대책회의를 하던 수행단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수행단은 박 대통령에게 이 사건을 어떻게 보고할지 갑론을박을 벌였다. 윤 대변인의 조사가 끝나고 보고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오후 5시 45분. 대통령에게 어떻게 보고할 것인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전용기는 LA에 도착했다. 박 대통령은 오후 7시 20분 교포 만찬 간담회에 참석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박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지만 윤 대변인의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이남기 수석은 서울의 민정수석실로부터 윤 대변인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고 받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이 수석은 2시까지 대통령에게 전달할 보고서를 작성했다. 아침 일찍 대통령에게 보고할 생각이었다.
이 수석은 다음날인 9일 오전 9시경 박근혜 대통령에게 성추행 사건을 보고했다. 최초 사건을 인지한 시간은 8일 오전 7시로, LA가 워싱턴보다 3시간 늦은 점을 계산할 때 29시간이나 늦게 보고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당혹스러웠다. 성추행으로 국가 품위를 손상시켰다. 아니, 인턴과 술자리를 가진 것부터가 업무 이탈이다.
“엄중하게 조치하세요.”
그 시각,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으로 한껏 들뜬 미국 교포 사회에 급속도로 괴소문이 퍼졌다. 물론 내용은 박 대통령을 수행하러 온 윤창중 대변인이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소문의 근원지는 미주 한인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 미시USA. 윤 대변인의 성추행설을 제기하는 글이 올라왔다.
“청와대 대변인이 박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 수행 중 대사관 인턴을 성폭행했다고 합니다. 교포 여학생이라고 하는데 이대로 묻히지 않게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번 행사기간 인턴을 했던 학생이라고 합니다.”
미국 교포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반신반의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내 윤 대변인의 경질 소식이 들려왔다. 윤 대변인의 성추행설 전말이 밝혀지기 전부터 교포 사회에서는 이 소문이 사실이라는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었다.
◇윤창중 대변인 귀국과 비서실의 조사
윤 대변인이 한국시간으로 9일 오후 4시 55분 한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 수행해야 할 대변인의 갑작스러운 귀국은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민정수석실은 방미 수행단의 지시대로 귀국한 윤 대변인을 불러 조사를 시작했다. 미국은 지금 오전 12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 조사 보고는 지체없이 이뤄졌다.
미국 시간으로 오전 9시. 한국 시간으로 10일 오전 3시경 윤 대변인의 경질이 결정됐다. 이 수석은 윤 대변인에게 이 사실을 직접 알렸다.
“자진 사퇴로 하겠습니다.”
“이미 대통령께서 경질하겠다고 결정하셨습니다.”
윤 대변인은 자진 사퇴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청와대는 윤 대변인이 고위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보이고 국가의 품위를 손상했기 때문에 경질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시간 10일 오후 6시 30분. 박근혜 대통령과 방미 수행단은 한국 땅을 밟았다. 그리고 청와대에서는 윤 대변인의 성추행과 관련한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다. 허태열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는 이정현 정무수석,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등이 참석해 난상토론을 벌였다.
“내일 제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겠습니다.”
회의는 허 비서실장의 사과로 결론을 맺었다. 이후 허 비서실장은 이남기 수석을 찾았다.
“이남기 수석 좀 불러주세요.”
하지만 그 시각 이 수석은 10시 40분 이미 기자실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었다.
“먼저 홍보수석으로서 제 소속실 사람이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대단히 실망스럽고 죄송스럽습니다.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허 비서실장은 당혹스러웠다. 이남기 수석이 사과를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또 사과를 한 대상이 국민과 대통령이 되면서 ‘셀프 사과’라는 비난 쏟아지고 있었다. “내일 사과문 발표는 예정대로 진행합니다. 그나저나 미국 쪽 상황은 어때요?”
미국에서는 메트로폴리탄 워싱턴 경찰청(MPDC) 내 성폭행과(Sex Assault Unit) 수사관들이 윤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 수사에 한창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8일 호텔로 출동해 피해자를 조사한 데 이어 또 다른 피해는 없는지 2차 조사도 들어갔다.
“경범죄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범죄만큼 중요하게 수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경찰 측은 이번 사건이 경범죄로 분류됐지만 피해자의 2차 진술에서 피해 사실이 추가될 경우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윤창중 대변인과 청와대의 날 선 진실 공방
11일 오전 10시 30분. 허태열 비서실장보다 먼저 기자들 앞에 선 이가 있었다. 귀국 후 연락 두절이던 윤 대변인이 등장하자 카메라 플래시가 섬광처럼 터졌다.
“여성 인턴과 술자리를 가진 것은 자신이 수차례 잘못을 지적한 데 대해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좋은 시간을 보내다가 나오면서 그 여자 가이드의 허리를 툭 한차례 치면서 ‘앞으로 잘해, 미국에서 열심히 살고 성공해’라고 말하고 나온 게 전부였습니다. 성적인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는 점을 저는 ‘윤창중’ 이름 세 자를 걸고 맹세하는 바입니다.”
민정수석실 조사에서 “인턴의 주장대로 엉덩이를 만진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것과는 다른 주장을 했다.
새벽 노크 소리를 듣고 뛰쳐나갔을 당시 “노팬티”였다는 이전 진술과는 달리 “얼떨결에 속옷 차림으로 갔다”고 주장했다.
잠시 침묵하던 윤 대변인은 무언가 결심한 듯 짧은 한숨을 토했다.
“사실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이 귀국을 종용했습니다. 미국 경찰에 소환돼 조사받는 수도 있고, 수사공조체제가 돼 있으니 귀국해서 수사를 받을 수도 있다는 방미팀 설명을 듣고 자진 귀국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 수석이 비행기를 예약해 놓은 뒤 귀국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이 수석이 ‘재수가 없게 됐다. 성희롱에 대해서는 변명을 해봐야 납득이 되지 않으니 빨리 워싱턴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야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수석에게 ‘제가 잘못이 없는데 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냐. 해명을 해도 이 자리에서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수석이 ‘1시 반 비행기를 예약해 놨으니 핸드캐리(수화물)를 찾아서 나가라’고 했습니다.”
윤 대변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윤 대변인의 주장은 청와대가 발표했던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부는 청와대에 대한 반격으로도 해석했다.
자연스레 여론의 눈은 이 수석의 입을 향했다. 결국 이날 저녁 이 수석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입장을 발표했다.
“그 때 정황상 100% 기억나진 않지만 제가 귀국하는 게 좋겠다고 얘기한 적은 없습니다. 대변인실 국장 등과 상의해 결정하라고만 했습니다.”
둘 중 누군가는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중요한 문제였다. 윤 대변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성추행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윤 대변인에게 귀국을 종용하고, 문화원을 통해 비행기를 예약해 여권까지 윤 대변인에게 직접 전달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반대라면 윤 대변인은 스캔들의 장본인이자 거짓말을 했다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후 언론에서는 비행기 표를 윤 대변인이 미국을 떠난 날인 8일 오전 9시경 주미 대사관 측에서 예약한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졌다. 이 수석과 윤 대변인이 만나기 30분 전부터 윤 대변인의 귀국행은 확정된 셈이었다.
12일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남기 홍보수석의 사의 표명을 발표하며 비서실 공직자가 다시 한 번 복무기강을 확실히 세우는 귀중한 계기로 삼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미 사건의 쟁점은 ‘윤창중 대변인에 대한 귀국 종용’을 둘러싼 진실로 옮겨갔다. 누가 대사관에 비행기 표 예약을 지시했을까.
<3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