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간의 지난 17일 회동 이후 세종시 문제를 보는 재계의 태도에 미묘한 기류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세종시로의 이전 가능성에 대해 "검토한 바 없다"면서 무조건 손사래를 치던 주요 기업들이 회동 이후 "제안이 들어오면 검토하겠다"라거나 "내년이 되면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는 등 다소나마 긍정의 힘이 실린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경련이 정부의 세종시 수정 구상과 관련해 주요 기업들을 상대로 의견조사를 하기로 함에 따라 그런 분위기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22일 재계 일각에서는 삼성그룹이 정부 측의 제안에 대비해 전기·전자 쪽 계열사의 일부 생산공정을 세종시에 두는 문제를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아직 제안받은 것은 없다"면서 선을 그은 뒤 "그러나 정부의 세종시 수정계획이 확정되고 제안이 들어오면 당연히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그룹도 세종시 문제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방침을 정하지 못했지만 고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지난 17일 정 총리와 회동하고 나서 세종시로의 이전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에게 "긍정적으로…가야지"라며 별도의 해석이 필요한 말을 던졌다.
이에 앞서 정 회장은 "내년되면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해 내년도 사업계획을 짜면서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는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이에 대해 그룹 관계자는 "정 회장이 세종시 사업 자체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일 것"이라며 말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세종시 수정 계획과 입주기업에 주는 혜택의 윤곽이 드러나면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LG생명과학 등의 이전설이 나돈 LG그룹도 내부적으로 아직 진지하게 검토하진 않았지만 정부 측 제안이 들어오면 살펴 보겠다는 입장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정부안이 도출되거나 구체적 제안이 오면 조직이나 시설 이전, 신설 등이 가능한지를 정밀하게 검토해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정 총리와의 회동에서 박용현 회장이 세종시 이전 문제에 대해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던 두산그룹은 "앞으로 신중하게 검토해 보겠다"며 '톤 조절'에 나섰다.
회사 이전은 다각적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므로 세종시의 새로운 조성안이 윤곽을 잡아가면 보조를 맞춰 살펴보겠다는 게 두산 측의 설명이다.
포스코는 세종시와 관련해 "기여할 부분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있다"며 검토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던 이전과는 달리 훨씬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화그룹은 일각에서 제기된 일부 계열사의 이전 가능성에 대해 일단 부인하면서도 상황이 바뀌면 '실무적 검토'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은 어떤 일을 추진할 때 손익을 먼저 저울질하게 된다"며 "정부의 독촉이 아닌, 인센티브가 세종시 이전과 관련한 향후 기업들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재계는 정부가 세종시로 기업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다른 지역의 불만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형평에 어긋나는 지원을 받고 세종시에 입주했다가 특혜시비에 휘말려 곤욕을 치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정부가 이런 문제도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롯데의 맥주공장 이전설이 나오자 이를 유치하려고 했던 김천시가 반발하는가 하면, 한국전력의 본사 이전설이 거론되자 한전 본사를 유치하려던 나주에서 반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한편 전경련은 정부의 세종시 수정 구상과 관련, 세종시에 대한 기업의 역할과 입주에 따른 인센티브 등 정부에 구체적으로 바라는 점 등을 설문조사 형식으로 파악할 예정이다.
전경련의 이 같은 움직임은 `세종시 세일즈'를 주도하는 정운찬 총리와 전경련 회장단 간의 회동이 이뤄지고 나서 구체화한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전경련은 조사 결과를 취합해 정부에 재계의 의견으로 전달하는 등 '조율사' 역할을 맡을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