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 같은 두 편의 광고 소비자 호평
차 성능 과시하던 광고서 공감 이끄는 광고로
“인생의 가장 고귀한 가치 무엇일까 고민”
어린 시절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노부부. 남편은 “내가 꽃 왕관을 씌워줬던 걸 기억하냐”고 묻지만, 백발의 아내는 오래전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아들은 드라이브를 가자고 제안하고, 노부부를 사진 속 추억의 장소로 데려간다.
차에서 내리는 노부부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변해있다.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 들판을 뛰어노는 두 사람. 남편은 수십 년 전 그랬던 것처럼 꽃을 엮어 만든 왕관을 아내에게 씌워준다. 다시 노인의 모습으로 돌아온 남자는 운전석에 앉은 아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오늘 정말 즐거웠어. 고맙다”고 말한다.
마치 한 편의 단편영화처럼 보이는 이 영상은 기아의 신형 ‘K8’ 광고다. 노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가장 빛나는 날들’(The Brightest Days)과 중년 부부의 이야기인 ‘앙코르’(The Encore) 두 편으로 제작된 광고는 아름다운 영상미와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K8 광고 제작은 현대차그룹의 광고 계열사 이노션의 김상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가 맡았다. CD는 광고 제작의 전 과정을 총괄하는 디렉터다. 김 CD를 만나 이번 광고 제작 과정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번 K8 광고의 가장 큰 특징은 자동차 광고 같지 않다는 점이다. 준대형 세단 광고의 전형적인 화법에서도 벗어났다. 성공한 남성이 고층 빌딩에서 내려와 차에 올라타고, 빛나는 밤거리를 배경으로 달리는 식의 뻔한 광고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는 설명이다.
김 CD는 “전형적이지 않은, 뻔하지 않은 고급 세단의 광고를 만들고 싶었다”며 “자동차 광고를 보면 그럴듯하게 연출된 이미지들의 나열인 경우가 많은데, 그것보다는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스토리를 가진 광고를 제작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분명 차 광고지만 차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가장 빛나는 날들’ 편에서 K8은 노부부가 과거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순간의 매개체로, ‘앙코르’ 편에서는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긴장이 풀린 아내를 편히 쉬게 하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김 CD는 “아는 사람이 어느 날 파격적으로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나타났는데 너무 매력적인 다른 사람으로 느껴질 때가 있지 않냐”며 “새로운 K8을 봤을 때 그런 인상을 받았다. 전면부 디자인이 크게 바뀌면서 완전히 다른 차로 느껴졌고 전체적인 밸런스도 너무 좋아졌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이것을 ‘나 뭐 바뀐 데 없어?’, ‘잘 봐봐. 사실은 커트도 하고 염색도 했거든’ 이런 방식으로 전달하는 건 매력이 없을 것 같았다”며 “바뀐 디자인을 노골적으로 노출하기보다 고급스러운 영상미와 스토리텔링으로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아름다운 결과물이 나오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도 있었다. 뻔하지 않은 광고를 만들기로 하면서 콘셉트를 설정하기부터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노션의 기획팀과 제작팀, 기아의 마케팅팀이 치열한 고민 끝에 결정한 광고의 슬로건은 ‘The priceless’다.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라는 의미다.
김 CD는 “기아 마케팅팀과 이노션은 대신할 수 없는 가장 고귀한 가치는 무엇일지 정말 치열하게 고민했다”며 “물질적 성공, 사회적 인정보다 훨씬 더 큰 가치는 내 곁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받는 진심 어린 인정에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이야기를 자동차의 동반석과 뒷좌석을 소재로 풀었다”며 “늘 뒤를 지켜주신 부모님을 모시고 떠나는 아들의 깜짝 이벤트, 늘 옆을 함께했던 사랑하는 아내의 마지막 공연을 위한 남편의 섬세한 배려 등 자동차와 함께하는 인생의 여정에서 느끼는 소중한 가치를 영화적 서사에 담아 전달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김 CD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광고를 촬영하면서 이번 광고가 대중에게 소구할 수 있겠다는 확신도 얻었다. 그는 “노부부 편에서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꽃 왕관을 씌워주는 장면을 촬영하는데 현장에 있던 아트디렉터가 눈물을 훔치더라”며 “뻔히 아는 내용을 찍는데도 감정이 울컥했구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분명의 작은 감정의 울림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여가와 휴식 등 일상을 함께하는 생활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광고도 자동차의 변화에 발맞춰 변하고 있다. 과거엔 하드웨어 성능을 강조했다면, 이제는 자동차가 소비자의 생활에 가져다주는 가치를 강조하는 추세다.
김 CD는 “자동도 전기차 등장을 계기로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은 실생활의 다양한 가치를 제공하는 상품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광고 메시지도 하드웨어 설명보다 일상 속 가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며 확장되고 있다. 그래서 소비자의 공감을 끌어내는 자동차 광고들이 더욱 주목 받는 시대라고 본다”고 말했다.
K8의 광고는 소비자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 듯하다. 두 편의 광고는 유튜브에서 게시 1개월 만에 각각 조회 수 400만 회를 기록 중이다. 누리꾼들의 호평도 쏟아지고 있다. “이건 광고가 아니라 짧은 한 편의 영화다”, “TV에서 본 광고를 다시 보고 싶어 검색해본 건 처음” 등의 댓글들이 수백 개 달렸다.
김 CD는 광고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에 대해 “K8이 가진 매력을 충분히 전달하고, 광고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에 대한 공감도 얻은 것 같아서 CD로서 큰 기쁨을 느낀다”며 “이 차를 통해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실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