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보조금 회수 조치 가능성도
유럽연합(EU)이 회원국 슬로바키아가 민주주의적 규범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자금 차단을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슬로바키아는 헝가리에 이어 EU가 자금 제재를 거는 두 번째 국가가 된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EC)는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가 EU 자금과 관련된 부패 사건을 조사하는 국립범죄청(NAKA)을 폐지하는 것에 대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EU는 피초 총리가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민주적 규범을 약화하고 있다는 이유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앞서 지난해 10월 피초 총리는 총리직에 복귀하면서 반부패 수사 기관인 국립범죄청을 폐지하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국립범죄청은 EU 자금과 관련된 부패 사건 등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는 기관으로 슬로바키아 내 독립적인 사법 기관이다. 슬로바키아는 전체 공공 투자의 약 80%가 EU 자금으로 충당되기 때문에, 자금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국립범죄청의 역할이 중요하다.
EU는 슬로바키아에 배정된 자금을 보류하는 등 ‘돈 줄 막기’에 나설 요량이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EU는 슬로바키아에 배정된 128억 유로(약 18조9828억 원)의 결속 기금 일부를 보류할 수 있는 '조건부 메커니즘(conditionality mechanism)' 발동을 고려하고 있다. 이는 EU 자금이 위험에 처했다고 판단될 경우 자금을 동결할 수 있는 제도다. 또 슬로바키아가 EU로부터 지원받은 코로나19 보조금 27억 유로도 회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한편 피초 총리가 ‘반유럽연합’ 성향의 인물인 점도 EU와의 갈등을 고조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그는 EU와의 관계에서 독립적인 입장을 강조하고 있는 ‘친러시아’ 인사로도 꼽힌다. 난민 수용 반대ㆍ이민 제한 등 강경한 정책을 추진해오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반대하면서 EU와 정반대 행보를 보인다.
피초는 재임 기간 여러 차례 ‘부패 스캔들’에 휘말렸다. 지난해 12월에는 부패 사범 처벌을 완화하는 내용의 형법을 개정에 나섰으며, 내부 비리 고발자 보호 장치를 줄이는 방안 등을 내놓으며 반대 시위가 일기도 했다. 2018년에는 대규모 반부패 시위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앞서 EU는 2022년 12월 헝가리에 대한 63억 유로의 통합 기금 지급을 조건부로 동결한 바 있다. EU는 헝가리 정부의 사법부 독립성 침해ㆍ언론의 자유 억압 등이 EU의 기본 가치인 민주주의ㆍ인권ㆍ법치주의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당시 EU는 처음으로 조건부 메커니즘을 적용해 자금 지급을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