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 국면에서 정부가 관리력을 상실한 모습이다. 잇따른 ‘응급실 뺑뺑이’ 사태로 의료현장 불안이 확산하자 중단했던 일일 브리핑도 재개했지만, 사태는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날 현재 응급실 운영시간을 제한하고 있는 의료기관은 이대목동병원, 세종충남대병원, 건국대충주병원, 강원대병원 등 4곳이나, 25곳에서 추가로 진료 차질이 우려된다. 180개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는 질환별로 성인 위장관 응급내시경, 부인과 응급수술, 사지 접합수술, 정신과적 응급입원, 인과적 응급수술이 가능한 기관이 평시보다 큰 폭으로 줄었다. 안과적 응급수술이 가능한 기관은 기존에도 75곳에 불과했으나, 59곳으로 더 줄었다.
의·정 갈등의 단초인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는 애초 국민 80~90% 찬성이라는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출발한 정책이다. 이 때문에 의대 증원을 이유로 한 전공의 집단행동에 대해서도 초기에는 부정적 여론이 우세했다. 문제는 이후 정부의 위기관리다.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은 복귀하지 않고, 전공의 공백 장기화로 남은 의료인력의 업무부담이 급증하며 이제는 전문의들도 짐을 싸고 있다. 또 정부의 거듭된 호소에도 경증환자들은 권역·지역응급센터에 몰린다.
전반적으로 의료정책 주무부처인 복지부가 집행권을 행사하는 중앙행정기관으로서 권위를 실추했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도 잃었다.
권위 실추의 배경에는 정치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의·정 갈등이 한창이던 4월 8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위원장과 독대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비대위원장 신분이던 3월 24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간담회를 진행하고, 지난달 20일 박단 위원장을 면담했다. 지난달 25일에는 대통령실에 2026년도 의대 증원 보류를 제안하기도 했다. 의료계로선 ‘윗선과 담판’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집행기관인 복지부와 협상해야 할 필요가 없다. 여당 일각에선 복지부 장·차관 경질론도 나온다.
정부는 일관성 없는 메시지로 스스로 권위를 깎았다. 복지부는 전공의 집단행동이 예고됐던 2월 7일 ‘집단 사직서 수리 금지명령’을, 19일에는 전공의에 대해 ‘진료 유지명령’을 발령했다. 20~21일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현장을 이탈하자 ‘2월 29일까지 복귀하라’고 최후통첩했다. 그런데도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자 3월 5일 사전통지서 발송을 시작으로 면허정지 등 전공의 행정처분 절차를 개시했다. 하지만 3월 11일 ‘행정처분 전 복귀자는 선처하겠다’고 발을 빼더니, 25일에는 의대 교수들의 건의를 수용해 모든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 절차를 중단했다.
이후에도 복지부는 계속해서 원칙을 물렸다. 5월 13일 미복귀 전공의들에게 ‘전문의 취득이 지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가 7월 8일 모든 행정명령과 행정처분을 철회하고 사직 전공의들에게 하반기 모집 재응시 특례를 주기로 했다. 17일에는 전공의 7648명의 사직 등을 처리했다. 하반기 모집 응시율이 저조하자 복지부는 지난달 7일 모집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이제는 전공의단체를 포함한 의료계에 복지부의 어떤 경고와 원칙도 먹혀들지 않는 상황이다.
국민 불안은 ‘실추한 권위’에 기인한 위기관리 실패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향후 행정력을 활용한 상황 개선도 어렵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지금 상황에서는 정부가 더 쓸 카드가 없다. 협상라인을 바꿀 수밖에 없다”며 “이제는 행정이 아닌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