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 개정 논란과 관련 정부와 정치권의 심각한 엇박자 속에 정작 수백만이 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속만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노동부 등 정부는 올들어 비정규직을 경제위기 속 악화된 기업환경을 감안해 계약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것을 요구하는 법안의 임시국회 통과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하지만 정치권은 서로 상반된 입장만 강변하고 있을 따름이다.
비정규직법안 논란은 2년이상 비정규직을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게끔한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된지 2년이 지나 다음달부터 정규직 전환의무가 생기기 때문이다.
◆국회 눈치만 보는 정부
노동부는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는 기업들이 대량해고에 나서 비정규직 해고 대란이 날 것이라 주장한다. 때문에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려 기업들이 2년더 현재의 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아도 되도록 허용하자는 입장이다.
노동부는 법 통과가 안될 경우 비정규직 근로자중 70만명이 해고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에 따르면 한승수 국무총리는 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6월 임시국회 공전으로 개혁법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만큼 국무위원들은 소관 상임위(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특히 비정규직 법안통과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입장이 받아들여져 법이 통과될지 여부는 매우 불투명하다.
◆여야간 좁혀지지 않는 견해차
한나라당은 마침내 지난 8일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기간을 2년으로 규정한 현행 비정규직법은 그대로 유지하되 해당 조항의 적용 시기를 유예키로 결정했다.
현행 비정규직법은 그대로 유지하되 적용시기를 부칙에서 유예한다는 잠정결론을 내린 것이다. 한나라당은 11일 의원총회를 열어 당론으로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 안상태 원내대표는 "6월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고용대란이 일어날 수 있는데 민주당은 법안 상정도 못하게 한다"며 "민주당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하고 있다.
한나라당측 환노위 간사인 조원진 의원은 이날 오후 YTN에 출연 “비정규직법 제정 취지가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적용 시기를 유예한 뒤 경제상황을 봐가며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법안 처리를 위해 우선 소관 상임위인 환노위만이라도 열어야 한다고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입장은 강경하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4대강 정비사업 예산이 22조원이 넘는다. 1년에 1조 2000억 원 정도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예산 드리면 1년에 20만 명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한나라당의 비정규직법 시행 유예 결정과 관련, "법집행 2년 유예는 기업에 혼란만 가중시키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절망과 배신감을 안길뿐"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환노위 간사인 김재윤 의원은 "지난 2년 간 정규직 전환을 학수고대하던 비정규직의 가슴을 피 멍들게 하는 미봉책"(환노위 간사 김재윤 의원)이라며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은 기간연장이나 유예에 있는 게 아니라 정규직과의 차별금지에 있다"며 "차별은 그대로 놔둔 채 단순히 기간을 연장하거나 유예하는 방법은 단순히 문제해결을 뒤로 미루는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규직 확대를 위한 법인세 감면이나, 임금 및 사회보험비 보조 확대 등의 정책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시행해야 한다. 벼랑끝 전술이 아닌, 여야와 노동계, 산업계와의 진정한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로드맵을 국민에게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노동계ㆍ재계의 평행선
재계의 노동계의 시각도 팽팽하다. 재계는 비용절감을 이유로 노동계는 차별없는 정규직 전환을 이유로 맞서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8일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늘릴 경우 해고 대신 계속 고용하겠다는 기업이 83%나 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대한상의는“오는 7월 이후 비정규직 대량실직사태를 막기 위해서 사용기간의 연장은 불가피하다"며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을 위해서도 6월 임시국회에서 비정규직법이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정부와 여당의 비정규직법 연장 개악 추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2년을 유예하든, 4년을 유예하든 계약기간 만료에 따른 해고위협과 사회적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국노총도 “민생법안인 비정규직법을 한나라당과 정부가 법안의 상임위 미상정 쟁점화를 통해 6월 임시국회 개원을 압박하는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라”고 공격하고 있다.
첨예한 이견속에 비정규직법 관련 어떠한 결론이 도출돼 나갈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