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폐업 예식장 자리에 요양병원 들어설 예정
지난해 17개 예식장 문 닫았지만…새로 개업한 요양병원 37곳
이날은 A 웨딩홀의 폐업일이었다. 고객들에게 문자로 폐업사실을 알린 A 웨딩홀 측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으로 결국 폐업을 결정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A 웨딩홀이 빠져나간 건물에는 요양 병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한때 호황을 누렸던 예식장은 2010년대 들어 결혼 감소로 어려움을 겪던 와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또 한번의 큰 고비를 맞고 있다. 한국예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문을 닫은 예식장은 17곳에 달한다. 결혼을 진행하던 호텔, 각종 회관까지 포함하면 실제 숫자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2월인데도 올해 들어 수도권에서 폐업한 예식장만 6곳에 달한다.
관련 업계는 예식장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국예식업중앙회 관계자는 "정부 지원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아예 하나도 없다"고 강조하며 "현 10억 원이 기준인 소상공인 지원 매출 기준을 폐지하고, 예식장에 세제 혜택을 제공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을 닫은 예식장이 늘며 소비자 피해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 6일 폐업한 B 웨딩홀의 경우, 폐업 당일 고객에게 문자로 폐업 사실을 알렸다. 당장 결혼식을 2주 남기고 폐업 통보를 받은 부부가 있는가 하면, 다른 업체가 폐업해 B 웨딩홀을 예약한 탓에 벌써 2번째 취소를 당한 예비부부도 있다.
B 웨딩홀은 폐업 통보 문자를 통해 인근의 다른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치를 수 있도록 이관하고 계약금을 돌려주겠다 밝혔다. 하지만 해당 업체는 현재 연락조차 잘 닿지 않고 있다.
A 웨딩홀에서 5월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던 이혜지(가명·31세) 씨는 "드레스, 메이크업, 스냅, DVD 업체와 하나하나 연락해 일정을 변경해야 했다"며 이 과정에서 정신적·금전적 피해를 봤다고 호소했다. 차일피일 미뤄졌던 계약금은 취재가 시작된 이후 뒤늦게 받았다.
결혼식은 식장과 연계된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업체에 전체 패키지로 예약하는 경우가 많은데, 식장이 갑자기 문을 닫으면 관련 일정이 모두 미뤄지며 고객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스드메를 따로 예약했더라도 일정 연기에 따라 스드메 업체에 위약금을 내거나 추가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
이혜지 씨는 "고객이 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면 많은 위약금을 물어야 하지만 예식장 폐업으로 갑자기 식이 취소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강조했다.
예식장 폐업으로 받은 피해를 보상받으려면 사실상 민사 소송밖에 답이 없다. 공정거래위원회 표준약관에 따르면 예식장이 예식일로부터 90일 이전에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 계약금의 두 배를, 90일 미만인 경우엔 예식 비용 전액을 물어줘야 하지만 권고 사항일 뿐이다.
대부분의 웨딩홀은 갑작스러운 취소에 대한 보상 규정을 마련하지 않았다. 실제로 B 웨딩홀의 계약서에는 '이용자는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예식을 할 수 없는 경우 사업자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한국 소비자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관혼상제 계약해지 및 위약금 관련 상담은 코로나 이후 2020년 이후 7008건으로 2019년(2573건)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다. 실제로 예비부부들이 모이는 결혼 관련 커뮤니티에는 예식장의 갑작스러운 폐업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갈수록 문을 닫는 예식장은 늘어나고 있지만, A 예식장 사례처럼 새로 문을 여는 요양 병원 수는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공공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2월 1일부터 올해 2월 1일까지 문을 연 전국 요양병원은 37곳이다. 코로나로 요양병원 개업이 다소 주춤했음에도 많은 숫자이다. 코로나 이전 2019년 2월 1일부터 2020년 2월 1일까지 문을 연 요양병원은 전국 71개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