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100조 원대의 돈 보따리를 푼다. 채권시장안정펀드(이하 채안펀드)를 20조 원 규모로 조성하고 증권시장안정펀드(증안펀드)는 10조7000억 원 규모로 가동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비교하면 채안펀드는 2배, 증안펀드는 21배 몸집을 불렸다.
또 기업어음(CP), 전자단기사채 등 단기자금시장의 ‘돈맥경화’ 현상을 막기 위해 7조 원 규모 자금이 투입된다. 원활한 회사채 발행을 위한 정책금융 지원금도 4조1000억 원이 집행될 예정이며, 정책금융기관이 기업에 직접 대출ㆍ보증하는 데 58조3000억 원이 동원된다.
금융위원회는 24일 제2차 비상경제회의 결과에 따라 마련된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19일 제1차 비상경제회의 때 동원하기로 한 자금 규모(50조 원)가 불과 닷새 만에 2배로 커졌다. 특히 1차 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금융지원 대상으로 설정했던 것이 이번 2차 때는 중견기업과 대기업으로까지 확대됐다.
금융위는 금융 불안 초기 단계에 대규모 자금을 쏟으며 강력히 대응하기로 했다. 시장 상황이 그만큼 불확실하고 악화 가능성이 커 과감한 선제적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특히 최근 경기 악화가 과거 두 차례 금융위기와 달리 실물 부문에서 시작된 점에 금융위는 주목했다. 코로나19의 팬데믹화(세계적 대유행)으로 소비ㆍ생산ㆍ투자 활동 둔화, 글로벌 공급망 교란, 국제교역 감소 등으로 실물 부문의 급격한 위축이 초래되면서 위기상황이 장기간 지속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앞으로 전개될 위기의 폭과 강도를 가늠할 수 없는 점까지 시장 안정화에 100조 원을 투입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이다.
2008년 글로벌 위기 때 동원된 대책들이 더 강력한 모습으로 부활했다.
우선 시장 불안 심리가 회사채 시장 경색으로 확산되지 않게 채안펀드를 20조 원 규모로 조성하기로 했다. 투자 대상은 회사채, 우량기업 CP, 금융채 등이다. 당초 예상보다 2배 큰 규모인 데다가 기업어음도 매입하기로 해 채권시장과 단기자금 시장의 투자심리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증안펀드도 10조7000억 원 규모로 조성돼 증시 안전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하지만 국내 증시 불안의 근본 이유인 코로나19 사태와 외국인의 매도세가 진정되지 않을 경우 증시 반등을 끌어내긴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유겸 케이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2008년 12월 채권안정펀드 집행 이후 국채 금리 및 회사채 스프레드 모두 안정화 국면에 진입한 바 있다”며 “증시안정펀드는 증시 하락을 막는 데는 기여하나 상승을 이끄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지원 대상에 대기업을 포함하면서 특정 기업에 대한 지원을 미리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금융위는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2조2000억 원 규모로 도입한다. 산업은행이 총액을 인수해 채권은행과 신용보증기금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회사채 차환에 어려움을 겪는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시장은 최근 유동성 우려가 커진 대한한공, 두산중공업 등이 수혜 대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대기업 지원 방식을 묻는 말에 “우선 기업이 자구 노력을 통해 시장에서 소화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신용 보강이 필요해지는 경우에 P-CBO(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 활용을 받아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P-CBO는 유동성의 애로를 겪는 기업의 회사채 발행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지난 1차 회의 때 6조4000억 원 규모의 도입이 발표된 바 있다. 이번 2차 대책을 통해 대기업도 대상에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