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공산당(中共)의 나라다. 인민민주독재라는 이름으로 국가운영의 기본구조인 입법·행정·사법 모두 당이 지배한다. 공산당의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가 최고 권력기관이고, 행정부 격인 국무원, 사법 기능을 갖는 최고인민법원이 그 아래 예속된다. 전인대의 핵심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다. 지금 시진핑 국가주석을 정점으로 한 7명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전인대는 이를 추인하는 거수기다.
공산당은 늘 옳고, 잘못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는 무오류의 존재다. 그 전체주의가 14억 인민의 모든 일상을 감시·통제·간섭한다. 인민의 알 권리나 언론·결사·종교의 자유 같은 건 없다. 언론은 당의 지도이념을 모든 중국인에게 알려야 하는 도구로서 국가의 관리를 받는다. 기본적 자유를 억압하면서도 중국 지배체제가 견고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힘을 키운 건, 당의 리더십이 유능하고 효율적이라는 인민의 신뢰가 바탕이었다.
그 구조에 금이 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방아쇠다. 전염병 발생 2개월 만에 중국 내 감염자가 8만 명에 이르고 사망자는 2400명을 넘었다. 이 수치도 중국인들은 믿지 않는다. 사실 중국 당국의 어떤 통계도 국제사회는 불신한다. 공중보건시스템과 열악한 의료 인프라의 민낯을 드러낸 참사다. 국가의 무능에 더해 정보 억압이 재앙을 키웠다. 의사 리원량은 처음 코로나 바이러스를 알렸지만 공안(公安)에 체포돼 핍박받았다가 결국 그 병에 감염돼 숨졌고, 정부를 비판하던 변호사 출신 시민기자 천추스와 칭화대 교수 쉬장룬 등이 실종됐다. 인민은 분노한다.
2012년 국가주석에 올라 이제 절대권력을 쥐고 황제의 위상을 굳힌 시진핑의 야망은 중국몽(中國夢)이다. 바꿔 말하면 세계패권의 추구다. 경이로운 경제발전으로 군사력 확장을 거듭하고, 세계의 헤게모니를 쥔 미국에 도전하는 유일한 맞수를 자임한다. 돈의 힘으로 펼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가 지배전략이다. 과거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참고 기다리며 힘을 기른다),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유소작위(有所作爲, 할 일은 적극 나선다)에서, 시진핑은 분발유위(奮發有爲, 떨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이룬다)로 나아갔다. 중국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충돌도 불사하겠다는 얘기다.
시진핑의 중국몽이 놓친 게 있다. 인민민주독재와 국가자본주의의 한계, 그것의 근본적 결함이다. 중국이 자신 밖의 존재에 끊임없이 강요했던 복속과 굴종의 역사는 주변국의 악몽이다. 중국의 지향점은 인류보편의 공유적 가치, 공생(共生)의 규범, 민주주의 공화정(共和政)과 거리가 멀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 존중,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신뢰구조 또한 없다. 국가자본주의는 개방적이고 투명한 시장경제가 아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그 실체를 여실히 드러냈다. 민심 이반이 시진핑과 공산당 체제의 위기를 불러 천하대란(天下大亂)으로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오지만 아직 성급하다. 그럼에도 중국의 패권전략과 세계의 지정학적 질서를 흔드는 도화선이 될 가능성은 크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따른 경제 후퇴,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홍콩 민주화시위 사태도 겹친다.
결국 중국이 우리에게 무엇이냐는 문제다. 시진핑은 역사적으로 한반도가 중국의 일부였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핵심 안보이익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무지막지한 보복을 가했다. 우리는 ‘사드 3불(不)’로 주권을 내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은 큰 나라, 한국은 작은 나라”이고, “중국몽에 한국도 함께하겠다”더니, “중국은 한국과 공동운명체”라고까지 말했다. 외교적 수사에 그치지 않는 친중(親中)·반미(反美)이념의 투영이다. 그 굴종의 접근이 코로나19 재앙을 한국과 중국이 공유하는 빌미가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나? 코로나 사태는, 추구하는 가치가 상반된 한국과 중국의 공생이 가능한지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