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 한일간 무역전쟁을 보는 중국의 속내는?

입력 2019-08-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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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중국경영연구소 소장

한일 간 역사적 깊은 골이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제한 조치 및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계기로 본격적 무역전쟁으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 배나 큰 일본은 한국과 무역전쟁을 해도 그 타격은 상대적으로 미미할 수 있다. 반면에 수출에 의존해 성장한 한국은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일부 국가들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일 간 무역갈등의 틈을 노리며 자국 이익 극대화를 고민하고 있다. 그만큼 한일 간 무역분쟁은 단순히 두 나라 간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미중 양국은 자국의 이익셈법에 따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소극적인 자세로 작금의 사태를 관망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한 발짝 물러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는 매우 복잡할 것이다. 한국 내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중국 여론은 한국을 응원하고 있지만, 중국 정부와 기업들은 다른 계산법이 있다. 사실 과거 역사의 틀 안에서 한중 양국 모두 일본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갖고 있다. 중일 관계를 말할 때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은 ‘사대두((死对头ㆍ死對頭)’라는 표현을 한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불구대천의 상대’, ‘철천지원수’, ‘어떻게 해도 화해할 수 없는 원수’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두고 중국 정부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고 있다. 과연 한일 무역전쟁을 보는 중국의 속내는 무엇일까?

첫째, 정치외교적 속내로 정서적으로 반일본 감정이 존재하지만, 미중 간 패권경쟁에 일본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에 결코 어느 편을 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당사자인 중국이 공정무역을 외치며 미국을 공격하는데, 트럼프식 일본의 불공정행위에 대해 중국이 무턱대고 일본을 비판하기 힘들다. 그만큼 중일 관계가 과거와 다르게 매우 친밀해졌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된 것이다. 작년 10월 일본 총리로는 7년 만에 500명의 경제인을 거느리고 아베 총리가 방중했고,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도 일본은 미국 눈치를 보지 않고 적극 참여하겠다고 중국에 약속한 바 있다. 불편한 중일 관계를 회복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더 나아가 2020년 도쿄올림픽과 2022년 베이징-장지아커우 동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협력 범위가 전방위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또한, 중국이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카드 중 하나가 ‘북한 이슈’인데, 기존처럼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가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결국 이번 사태는 북한에는 호재이고, 그것은 당연히 중국 입장선 결코 나쁘지 않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둘째, 경제적 속내로 중국은 한일 무역전쟁에서 얻게 될 실익과 손실 계산을 철저히 따져볼 것이다. 우선 실익 부분에서 중국은 한일 간 무역마찰로 인해 중국산 소재·부품이 향후 일본의 대체재로 반사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단기적 효과가 있겠지만 결코 중장기적 실익으로 보지 않는다. 고순도 불화수소의 경우 아직 중국의 기술력은 일본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에 한국이 임시방편으로 활용할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대체재로 성장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중국은 한국을 패싱하고 일본과의 직접적 기술협력과 소재·부품 가치사슬을 새롭게 구축하고자 할 것이다.

그렇다면, 손실은 무엇일까? 일본에서 한국으로 수입된 소재·부품이 재가공되어 다시 중국에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으로 수출된다. 거기서 생산된 반도체 칩은 다시 화웨이 등 중국 IT기업에 판매된다. 결국 반도체 가치사슬 속에서 중국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도 단기적 손실을 보겠지만, 결코 중국만이 입는 손실이 아니고 글로벌 IT 가치사슬에 미치는 영향의 일부다.

결국 이번 사태를 보며 중국이 바라는 것은 한국과 일본 기업 간 협력이 느슨해지면서 중국 기업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성장뿐만 아니라 비메모리 산업 성장을 사전에 견제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사실 삼성이 ‘2030 비메모리 세계 1위 전략’을 내세운 뒤 중국과 일본 모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경우 이미 중국의 경쟁력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삼성이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비메모리 분야까지 집중 투자한다는 것에 당연히 불편해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한국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의 경우 삼성의 ‘2030 비메모리 세계 1위 전략’이 일부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중국은 한일 간 무역전쟁을 보며, 기술 종속에서 기술 자립에 대한 의지를 더욱 강화하는 분위기다. 중국의 최첨단 하이테크 산업 육성정책인 ‘중국제조 2025’를 통해 2020년 자급률 40%를 목표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한다는 전략이지만 아직 자급률은 10% 수준이다. 따라서 중국은 홍색 공급망 구축을 위한 파트너로 한국이 아닌 일본을 선택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결국 우리 스스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다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기울어진 한일 간 소재·부품 가치사슬 구조를 통해 우리는 지난 한국경제 성장의 취약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한국의 소재·부품 산업의 자립 필요성은 사실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제는 기술 자립과 함께 한국을 패싱하고 일어나는 중일 간 소재·부품산업 협력에도 대응해야 한다.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가야 한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대사관 경제통상관 및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을 5년간 역임하며, 3,000여 개가 넘는 기업을 지원했다. 현재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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