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적합업종 시행을 앞두고 식품기업들의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13일부터 시행되는 생계형 적합업종은 73개 업종으로 장류와 김치가 포함돼 있다. 장류와 김치는 대기업이 뛰어들면서 시장이 커진 대표적인 사례다.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장류와 김치가 생계형 적합업종에 포함되면서 두부와 막걸리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막걸리는 2011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대기업의 진출과 투자가 사실상 가로막혔다. 중소기업으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던 이익은 오히려 시장 축소로 돌아왔다. 막걸리 출고량은 2011년 45만8198㎘에서 2013년 42만6216㎘로 줄어들었다. 막걸리 수출액은 2011년 5274만 달러(약 595억 원)에서 2년 만에 1886만 달러(약 213억 원)로 3분의 1 토막 났다. 동반성장위원회는 2015년 막걸리를 중기 적합업종에서 제외했지만 이미 시장은 5000억 원대에서 1000억 원대까지 쪼그라든 뒤였다. 적합업종 해제 4년째인 올해 막걸리 시장은 3000억 원대로 적합업종 지정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두부 역시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됐으나 국산콩 수매량이 감소하고 시장 규모마저 위축되자 2014년 국산 콩 포장두부가 규제에서 제외됐다.
이처럼 두부와 막걸리 시장에서 대기업을 배제시킨 후 겪은 부작용이 이번엔 품목만 달라진 채 김치와 장류로 번질 위기다. 특히 김치의 경우 한식 세계화 대표 품목이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타격까지 불가피하다.
김치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대해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점은 김치 산업 위축으로 중국산 김치에 시장이 역전되는 것이다. 이미 중국산 김치 수입은 매년 증가해 지난해 27만 톤 이상이 수입됐다. 이는 같은 기간 김치 수출량 2만4000톤 대비 10배 이상이다. 김치 수출은 대부분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어 적합업종 지정 후 김치의 수출입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종주국 지위를 중국에 잃을 수 있다는 전망도 기우가 아니다. 국내 상품 김치시장은 1조4000억 원이지만 한식 세계화 추진 이후에도 김치 수출 규모는 800억 원대에 머물러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투자가 제한되면 국내 공급 물량 감소로 인한 가격 상승이 일어나는 동시에 주요 수입국인 중국으로부터의 김치 수입 물량이 급증할 수 있다”며 “특히 가격경쟁력을 최우선시하는 업소용 김치는 대부분 중국산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업소용 김치의 중국산 비중은 80%에 이르는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국산 배추의 소비 감소에 따른 농가 피해도 문제다. 앞서 두부의 적합업종 지정 시 발생했던 콩 수매량 감소가 배추로 품목만 바뀐 채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식품기업들이 사활을 건 한식 세계화도 적합업종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연구개발(R&D)이 필수인데, 사업에 대한 규제로 시장 규모가 한정된다면 기업 역시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더 커질 가능성이 없는데 R&D 투자를 할 기업은 없을 것”이라며 “한식 세계화를 위해서라도 적합업종 지정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치 위생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높다. 대기업은 HACCP(해썹), LOHAS 등 다양한 인증을 받았지만 중소기업의 HACCP 인증 비율은 15.5%에 불과하다. 실제로 최근 소비자원 조사 결과 절임배추에서 대장균이 발생한 사례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