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증시도 현대차와 크게 다르지 않다. DM(상대적 안정성과 주주환원 정책)도, EM(고성장과 환효과)도 아닌 어중간한 시장에 갇혀 있다. EM만큼 성장도 못하고, DM만큼 주주가치를 보장해 주지도 않는다. 그나마 과거 EM의 위기가 몰아칠 때는 한국증시가 EM 내에서의 피신처(shelter)였다. 하지만 안전할 뿐 더 이상 피신처는 아니다. 아르헨티나와 터키의 위기 국면에서 한국의 CDS 프리미엄이 42bp 수준에서 안정을 보였지만, MSCI 기준의 한국 PBR는 외환 위기국인 터키와 비슷한 수준인 0.9배에 불과하다. 외국인은 한국의 주식을 팔았다.
이유는 뭘까? 대만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인당 GDP는 2.5만~3만 달러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비슷하고, 기업 실적에서 IT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이 유사하다. 대표 주가지수(코스피와 가권지수)에서 삼성전자(20%)나 TSMC(20%) 같은 기업의 비중이 역시 크다는 특성도 유사하다.
하지만 밸류에이션은 다르다. 10월 말 기준으로 MSCI코리아의 12개월 Fwd P/E는 7.5배에 불과하지만, 대만은 12.3배였다. 대만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P/E가 10배 미만으로 내려간 적이 없지만, 한국은 10배 이상이었던 기간이 길지 않다. 여러 가지 특성이 비슷함에도 이렇게 다른 밸류에이션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차이는 바로 배당이다. 10월 말 12개월 Fwd 배당금을 기준으로 한국의 배당성향은 20%, 대만의 배당성향은 61%이다. 배당수익률 측면에서도 한국은 2.7%, 대만은 4.9%이다. 수출에 민감하고 특히 IT 업황에 전체 기업 실적이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한국과 대만이 동일하지만, 배당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특히 금융위기 시기가 특징적이다. 2009년 금융위기로 한국과 대만 기업의 실적 추정치는 동시에 하향 조정됐다. 배당은 어땠을까? 당연히 감소했지만, 한국과 달리 대만은 기업 이익에 비해 느리게 하향 조정됐다. 2009년 2월 말 추정치를 보면, 대만의 배당성향은 141%였다. 순이익 적자가 나더라도 배당은 지급하겠다고 선언하는 기업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같은 시기에 한국 배당성향은 28% 수준에 불과했다. 실적이 감소하면 배당도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지금이나 금융위기 시기나 배당성향에는 차이가 없다.
이렇게 주주를 대하는 차이에서 밸류에이션이 차이가 발생한다.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주주의 가치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기업과, 이익이 날 때에만 주주의 권리를 챙겨주는 기업 간의 밸류에이션이 동일할 리 없다.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배당성향은 배당수익률과 PER의 곱으로 표시할 수 있다. 배당이 늘어나면, 밸류에이션이 상승하든가 배당수익률이 증가하든가 둘 중 하나다. 보통은 배당성향이 늘어나면, 배당수익률과 PER가 배당성향 증가분을 나누어 반영한다. 대만과 한국의 국가 주식시장 밸류에이션은 이러한 차이가 반영돼 있다.
물론 세법의 차이, 국민의 주식 보유 비중 등에서도 다른 점이 존재한다. 배당을 늘리면 세제 혜택을 주는 대만과 달리 한국은 2018년 세제 개편에서 배당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외했다. OECD 국가 중 한국은 가계자산에서 예금·현금 비중은 높은 편에 속하고, 주식·뮤추얼펀드 비중은 낮은 편에 속한다. 정책 측면에서도 한국은 배당 확대에 적극적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제 성장만이 투자의 잣대가 될 수 없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현금을 쌓기만 했다. 배당도, 자사주 매입도 시장의 기대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렇다고 성장을 위한 투자를 늘리는 것도 아니다. 주주를 위해 파이를 키운 것도 아니고, 남은 이익을 주주에게 환원해 주지도 않았다.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주주가 움직여야 한다, 이후 KOSPI 상승의 잣대는 ‘주주 가치’에 있고, 가능성은 기업들의 변화와 주주행동주의의 확산에서 찾아야 한다. 긍정의 씨앗은 이미 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