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스닥시장 활성화를 위해 상장 문턱을 대폭 낮추자, 부실 회사를 걸러내는 자정 기능이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회계감사 기준을 강화하고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요건을 확대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상장 요건을 낮춘 만큼, 보다 엄격한 퇴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지난 4년 간 코스닥시장에 신규 상장된 기업은 324곳이었으나, 상장폐지는 66곳에 불과했다. 신규 상장 기업수는 상장 요건이 완화된 2015년 109곳으로 최고치를 찍은 후, 2016년과 2017년 각각 70곳 이상을 기록했다. 반면, 이 기간 동안 상장폐지 기업의 연간 평균은 16.5곳에 불과했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중소·혁신기업성장을 기치로 매년 코스닥 상장 문턱을 낮추고 있다는 점이다. 긍정적 취지에도 불구하고 부실기업의 진입 통로도 확대된 셈이다. 11일 정부가 발표한 ‘코스닥시장 활성화를 위한 자본시장 혁신안’에서는 이익미실현 기업의 상장을 지원하는 테슬라 요건의 확대와 증권사 환매청구권(풋백 옵션) 부담 완화, 코스닥시장 전용 3000억 원 규모 펀드 조성, 연기금 투자 유도 방안 등이 담겼다. 이번 조치로 비상장 외감대상 기업 2800곳이 추가로 코스닥 문턱을 통과할 수 있게 됐다.
금융위는 과거 부실기업이 속출했던 닷컴버블을 재현하지 않겠다며 상장실질심사 강화 등 제도 보완책을 마련했다. 문제가 있는 기업은 상장 후 회계감사 기준 강화하는 등, 외부감사법을 통해 걸러내겠다는 생각이다. 또 회계 감사의견이 ‘비적정’에서 ‘적정’으로 바뀐 기업, 외부감사인으로부터 2회 연속 한정 의견을 받은 회사들을 상장실질심사 대상에 새롭게 포함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해 상장폐지된 20곳 중 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의 상장실질심사를 거쳐 퇴출된 기업은 아이이와 케이엔씨글로벌 등, 단 2곳에 불과했다. 상장폐지의 대부분은 ‘형식요건 위반’이나 ‘자발적인 폐지’였다. 부실기업의 조기 퇴출을 결정하는 상장실질심사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도 여기에 있다. 중시 진입을 낮췄다면, 보다 강화된 퇴출 기준을 적용해 시장의 신뢰성을 담보해야만 코스닥이 살아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증시 전문가는 “진입을 쉽게 해줬다면 결국 시장의 성패는 관리에 달린 것”이라면서 “코스닥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후 퇴출 요건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다른 전문가는 “미국 나스닥의 경우 증시에 상장된 종목의 주가가 1달러를 밑돌 경우 바로 퇴출시키는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며 “코스닥도 상장 후 주가가 액면가를 밑돌 경우 상장실질심사 대상으로 선정되지만, 운영주체인 거래소가 퇴출에는 소극적이어서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