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당국이 의약품의 임상시험이 종료된 이후 위반사항이 발견됐다며 임상정지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이미 임상시험이 끝난 상황에서 내린 임상정지처분은 실효성이 없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국은 행정처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식약처, 테고사이언스 임상정지 처분..임상 기종료로 처분 실효성 논란
14일 업계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테고사이언스의 ‘TPX-105'에 대해 임상시험 업무정지 1개월 처분을 내렸다. 임상시험 종료 후 평가방법의 일부 변경에 대해 식약처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처분 기간은 9월21일부터 10월20일까지다. TPX-105는 테고사이언스가 주력 제품으로 개발 중인 주름개선세포치료제다.
약사법에 따르면 ‘의약품 등으로 임상시험 또는 생물학적 동등성시험을 하려는 자는 그에 관한 계획서를 작성해 식약처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승인받은 사항을 변경하려는 경우에도 총리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변경승인을 받아야 한다’라고 명시됐다.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에서도 ‘임상시험 의뢰자 또는 임상시험실시기관의 장은 임상시험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승인 또는 변경승인한 임상시험 (변경)계획서에 따라 안전하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실시할 것’이라고 규정됐다.
식약처 관계자는 “테고사이언스는 당초 임상시험계획을 승인받을 때와 다른 방법으로 임상시험결과를 평가했다”라고 설명했다. 테고사이언스 측도 “처분 사유는 TPX-105의 임상시험 종료 후, 평가방법의 일부 변경에 대한 보고가 누락됐기 때문이다”라고 인정했다.
이에 따라 관련 행정처분의 기준에 따라 임상시험 업무정지 1개월 처분이 확정됐다. 임상시험을 1개월 동안 중단하라는 의미다.
임상시험 관련 행정처분 기준을 보면, 임상시험계획 승인을 받은 자가 변경승인을 받지 않고 승인받은 사항을 변경하면 임상정지1개월 처분을 받는다. 2차 처분은 3개월, 3차 처분은 6개월로 임상정지 기간이 늘어난다.
테고사이언스의 임상시험 업무정지 처분의 경우 이미 임상시험이 종료됐다는 점에서 사실상 효력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테고사이언스는 이미 TPX-105의 임상시험을 종료한 이후 식약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한 상태다. 임상시험에서 문제가 발생해 행정처분을 내렸지만 해당 임상시험은 이미 종료돼 처분 이후 중단되는 임상시험은 없다는 얘기다.
테고사이언스 측도 보도자료를 통해 "TPX-105는 이미 임상이 종료됐기 때문에 금번 행정 처분이 품목허가와 관련된 업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며 행정처분의 실효성이 없다는 점을 시인했다. 임상시험이 종료된 이후 해당 임상시험 결과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위반사항이 발견돼 뒤늦게 효력없는 처분을 내리는 기현상이 연출된 셈이다.
다만 품목허가 과정에서 해당 행정처분이 영향을 미칠지 여부는 추후 심사 과정에서 판단해야 할 문제일 뿐 현재로서는 예상할 수 없다는 게 식약처의 인식이다. 이와 관련 테고사이언스 측은 “식약처와의 의견 조율과 같은 품목허가 승인을 위한 일반적인 과정 중 하나일 뿐”이라며 “금번 사안은 이미 식약처와 논의가 완료됐으며 현재 예정됐던 TPX-105 품목허가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한미 '올리타' 등 임상종료 후 위반사항 발견으로 '뒷북 처분'..식약처 "대책 부심"
사실 의약품의 임상시험 관련 행정처분은 실효성을 나타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임상시험 진행 과정에서 위반사항을 발견한 것이 아닌 임상시험 종료 이후 위법성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아 ‘뒷북 행정’ 가능성에 노출됐다.
실제로 상당수 임상시험 관련 행정처분의 경우 이미 임상시험이 종료돼 처분 실효성이 없는데도 뒤늦게 임상정지 처분을 내리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식약처는 지난 4월 한미약품의 올리타(HM61713)의 임상시험을 4월17일부터 7월16일까지 3개월간 중단하는 내용의 임상시험업무정지 행정처분을 내렸다.
중증 피부이상반응인 독성표피 괴사용해(TEN, Toxic Epidermal Necrolysis)에 대해 식약처에 보고하면서 시험책임자의 약물과의 관련성에 대한 평가 내용을 그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려진 행정처분이다.
이 처분은 지난해 불거진 올리타 임상시험 중대이상반응 늑장보고 논란에 대한 후속조치다. 당시 한미약품이 중대이상반응을 뒤늦게 보고했다는 지적이 국회에서 제기됐고 식약처의 조사 결과 행정처분을 확정했다.
하지만 처분 대상으로 지목된 임상시험은 막바지 단계였고 한미약품 입장에서는 사실상 임상시험업무정지 처분에 따른 손실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중앙보훈병원도 올리타의 임상시험 진행 과정에서 '중대한 이상반응이 발생하였음에도 적절히 평가ㆍ보고하지 않고 1년 이상 지연보고해 임상시험계획서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임상시험업무정지 3개월 처분을 받았지만 실질적인 효력은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식약처도 임상시험 중단 처분의 실효성에 대해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상당의 임상시험 관련 위반사항은 종료 이후 결과보고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임상시험업무중단의 효력이 없는 사례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임상시험 진행 과정에서 발견한 위반사항이 아닐 경우 임상시험 관련 처분은 실효성이 없는 ‘껍데기 처분’에 불과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현실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만한 뾰족한 대안을 찾기 힘든 게 사실이다. 임상시험 관련 행정처분을 과징금으로 대체할 수도 없다. 과징금은 관련 의약품의 생산실적을 토대로 산정하는데, 아직 허가도 받지 않은 의약품의 경우 생산실적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정 임상시험에서 발견된 위반사항을 이유로 해당 업체가 진행 중인 다른 임상시험에 처분을 적용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행정처분 기준의 강화만이 능사는 아니다. 경미한 위반사항의 경우 임상시험 중단으로 이어지면 임상시험 참여를 통해 약물을 복용 중인 환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또 다른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임상시험 관련 행정처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문가들에 연구 용역을 맡기는 등 대책을 강구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