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암흑의 190일이었다. 겉으론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상할 대로 상했다. 당분간 추가 혼란도 불가피하다. 이재용 부회장 재판이 2심과 3심으로 이어질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뒤 삼성은 사업마다 빨간불이 켜졌다. 삼성증권은 초대형 투자은행 사업 진출에 발목이 잡혔다. 대주주인 이재용 부회장이 재판을 받는 상태라며 금융당국이 발행어음 사업 심사를 보류한 탓이다. 재판 결과가 확정될 때까지 길게는 수년간 심사 자체가 열리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사업이 중단된 셈이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진두지휘했던 하만 인수합병 이후 제대로 된 대형 M&A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상반기 인공지능 관련 기업들을 인수하려고 눈독을 들였지만, 총수 공백으로 사실상 모든 M&A를 미뤘다.
이 부회장의 구속과 함께 그룹 컨트롤타워가 사라져버린 것도 각 계열사가 혼란스러워하는 부분이다. 62개 계열사, 연 매출 300조 원, 임직원 50만 명에 달하는 기업집단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계열사별로 자율 경영을 시작했지만, 이는 한계가 있다. 계열사 간 협업이나 그룹 사업 재편 등을 위한 교통정리는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총수 부재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금융, 전자, 바이오 ‘삼각편대’로 구성된 사업재편이 모두 멈췄다. 지난해 12월 초로 예정됐던 사장단 인사 역시 무기한 연기됐다.
삼성의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인 삼성바이오로직스도 4ㆍ5공장 건설 논의가 답보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올 2분기 삼성전자의 경영 전략과 대규모 투자, M&A 등을 결정하는 사내 경영위원회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인 2차례만 열렸다.
또 이재용 부회장은 구속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엑소르 이사회에서 차기 이사진에서 제외됐으며 보아오 포럼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지난달 열린 앨런앤코 선밸리 미디어 콘퍼런스에도 못 갔다. 재계 관계자는 “전 세계 기업들이 인맥 구축에 나서는 상황에서 향후 삼성의 경쟁력이 뒤처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말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올 상반기 반도체 슈퍼 호황에 힘입어 사상 최고 실적을 냈지만, 총수 부재로 인해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침체된 것은 사실”이라며 “삼성이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전문 경영인의 역할과 오너의 역할은 분명 다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