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균형 성장을 목표로 야심차게 내놓은 ‘서울시 생활권계획(안)’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역별로 상권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타당한 동기 없는 상권 확대가 오히려 폐업을 늘리는 악순환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서울시는 ‘서울시 생활권계획’을 발표하면서 지역별 자족성을 강화하고 지역균형성장을 위한 정책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생활권계획에는 총 75개 중심지별 발전방향과 관리방안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담겨 있다. 향후 공공·민간에서 중심지에 대한 지구단위계획이나 개발계획을 수립할 때 이번 계획안을 바탕으로 하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시는 “이번 생활권계획이 지난 5년간의 서울 도시계획 대장정의 결과물이자 서울 도시계획 체계를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시의 생활권계획이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공약 중 하나인 ‘도시재생 뉴딜’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소비심리가 없는 상황에서 상권만 늘릴 경우 낙후지역 내 유력 상업지역의 땅값만 올리고, 자칫 폐업을 늘리는 악순환을 불러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상권 확대로 지역 균형?… “고민 없는 방안” 지적 = 전문가들은 골목상권의 폐업률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시가 내놓은 ‘상권 확대’가 얼마나 제 역할을 해낼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한다. 질(質)적 개발보다 규모에 집착해 자칫 각 지역에서 문 닫는 가게만 더 늘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상권분석 시스템인 ‘우리 마을 가게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지난 3년간 폐업신고율은 지난해 4분기를 기준, 25개 자치구 중 도봉구(-0.1%p 감소)를 제외하고, 모두 전년 대비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자치구별로 조사된 외식·서비스·도소매업의 3년간 폐업신고율은 평균 13.94%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올해 16.38%로 2.44%p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균형 발전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상업지역만 늘려준다고 낙후지역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영곤 강남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기존에 강남·서초 등 동남권에 개발이 몰렸던 건 입지 여건상 타당한 동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동북·서북·서남권에 상업지역을 늘려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발상 자체에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지역민의 소비가 뒤따라오지 못하면 상가 미분양이 속출하는 등 악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실장도 “최근의 정국 혼란, 중국의 사드 보복 등의 악재로 인해 소비심리가 위축돼 압구정·강남·북촌·인사동 같은 주요 상권의 유동인구가 감소했으며, 이 상권에 대한 선호도 일정 부분 위축됐다”며 “토지에 대한 규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통망 확충이나 지역의 자족 기능을 확충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함 실장은 또 “상권 조성은 지역 일자리 확충과 기업 유치를 병행해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비력 미약하면 땅값 인상만 부추겨” = 또 다른 우려는 상업지 확충에 따른 ‘묻지마’ 투기다. 상업지역 지정을 앞두고 시중 자금이 부동산 매입에 몰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낙후지역의 경우 건물 매매가격이나 땅값이 낮아 단기 차익을 노리는 자금유입이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상권 확대 계획이 결실로 이어지지 못하거나 장기화할 경우 개발 기대감만 높여 과거 뉴타운 정책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상권 확대 구역에 포함된다고 해도 사업성이 부족하거나 소비 여력이 따라주지 못할 경우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시는 이번 생활권계획안을 위해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1000회 이상의 내부회의를 거치고 200회 이상의 자치구 협의를 진행했다. 각 지역 주민 6000여 명이 직접 참여한 상향식 도시계획이라는 점도 시가 이번 계획안에 자신감을 갖는 이유다. 불균형 해소라는 정책 취지는 좋았지만, 정책을 위한 동원 규모만 컸을 뿐 현실성 없는 대책이라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운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이번 정책 발표가 내년에 있을 지자체장 선거를 의식한 행보일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김 교수는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인한 산업구조 재편으로 리테일이 사양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계획안은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 정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