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인문경영] 영감탱이냐 양반이냐 선생이냐

입력 2017-06-0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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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은 언어 종목(?) 중 가장 변동성이 크다. 시대에 따라 등락 파고를 탄다. 호칭의 ‘시장가격’은 대접받고자 하는 자기 인식과 접대하고자 하는 상대 의식의 접점에서 형성된다. 이는 호칭 프리미엄과 호칭 디스카운트로 표현할 수 있다. ‘호칭 프리미엄’이란 특정한 호칭의 가치 상승으로 선호와 편중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호칭 디스카운트’는 그 반대다. 특별한 의미로 쓰였던 한때의 가치가 추락, 낮게 할인돼 저평가되는 현상이다. 같은 호칭이지만 존칭(尊稱)은커녕 비칭(卑稱)으로 전락하는 경우다.

영감, 양반, 선생, 사장… 우리 사회에서 남자 어른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호칭을 살펴보자. 현재 시점에서 영감과 양반은 호칭 디스카운트, 사장은 호칭 프리미엄의 예다. 선생은 제값을 유지하는 호칭 종목이다.

먼저 ‘영감’이라는 호칭부터 보자. 대선 유세 기간 중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장인을 ‘영감탱이’라고 말해 비판받았다. ‘탱이’도 문제였지만 ‘영감’이라는 어감 역시 일반인에게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영감(令監)은 그 어원을 알고 보면 낮춤말이 아니라 높임말이다. 원래 정3품(正三品)과 종2품(從二品)의 고위직 벼슬아치를 일컬었다. 관료 사회에서는 자신들끼리 높여 부르는 말로도 쓰였다.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나이 어린 고위 공직자들조차 서로 ‘군수 영감, 판사 영감’ 하는 것이 통용됐다. 이후 영감은 나이 든 남자에 대한 존칭으로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다. 급기야 ‘탱이’란 낮춤말이 어울릴 정도로 나잇값을 하지 못하는 뒷방 노인의 의미로 추락을 거듭했다.

양반이라는 호칭도 신분제의 잔재다. 고려ㆍ조선 시대에 관제상의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됐다. 역시 ‘영감’처럼 존칭에서 범칭(凡稱)으로, 다시 비칭으로 몰락하는 경로를 겪어왔다. 생각해보라. 마주 보고 “이 양반아, 이 영감아”라고 말했을 때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요즘 일반 남자를 가리킬 때 널리 쓰이는 존칭은 무엇일까. 호칭 프리미엄, 즉 실체에 비해 고평가해 선호하는 호칭은 사장이다. 오죽하면 길을 가다가 “사장님” 하면 열이면 열 사람 모두 다 돌아본다는 노랫말이 나왔겠는가. 사장이 되고 싶고, 적어도 사장처럼 행세라도 하고 싶은, 또 상대를 사장으로 대우하면 기분 좋아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상호 의식이 작용하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라는 자본주의 시대의 내재된 욕망을 읽을 수 있다. 신분제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양반, 영감이 행세하는 지배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선 ‘금력(金力)’을 가진 사장이 그 역할을 한다는 암묵지(暗?知)가 깔려 있다.

반면에 ‘선생’은 시대 변화와 상관없이 제값을 유지하는 호칭이다. 본래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 학예가 뛰어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에서 출발했다. 성(姓)이나 직함 따위에 붙여 남을 높여 이르는 말로 두루 쓰인다. 전직이든 현직이든, 연장자이든 연하자이든 두루 쓸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양반, 영감의 키워드가 신분제에서의 권력, 사장은 자본주의하에서의 금력이라면 선생에는 시대 초월 인품력이라는 키워드가 내포돼 있다.

양반, 영감, 사장 등 호칭의 등락을 보며 만감(萬感)이 든다. 호칭 프리미엄과 호칭 디스카운트에 내재된 인간의 욕망과 갈망의 긴박한 추격전이 읽혀서다. 어느 시대든 특권층은 신분, 재산 그 무엇으로든 자신들의 특별성을 구별시키고자 했다. 단적으로 그것이 호칭으로 나타난다. 일반층은 이를 선망하고, 호칭으로라도 모방하고 추격해 편입되고자 했다. 신분제 시대의 ‘양반-영감’, 자본주의 시대의 ‘사장’ 바통을 이어 새로운 시대의 호칭 프리미엄을 이어갈 다음 호칭 주자는 무엇이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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