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통시(啐啄同時)’는 선불교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 깨달음을 주고받는 상황을 표현한 말이다. ‘啐’은 ‘재잘거릴 줄’이라고 훈독하고, ‘啄’은 ‘쫄 탁’이라고 훈독한다. ‘啐’은 알을 깨고 나오려 하는 병아리가 어미 닭에게 신호를 보내는 소리이고, ‘啄’은 어미 닭이 병아리가 보내는 신호를 듣고 알껍데기를 쪼아서 깨주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이 ‘啐’과 ‘啄’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때를 놓치면 병아리는 알에서 나오지 못하여 죽고 만다. 이처럼 ‘동시’의 의미를 강조한다면 ‘줄탁동시’라고 읽는 것도 틀리지 않다. 그러나 이 말은 대부분 ‘줄탁동시’가 아니라, ‘줄탁통시’라고 읽는다. 이때에 ‘동同’은 ‘통洞’과 같은 의미인데, 여기서의 ‘洞’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골(골짜기) 동’, ‘굴 동’, ‘동네 동’으로 훈독하는 ‘동’의 의미가 아니라, ‘통철(洞徹)’의 의미, 즉 ‘꿰뚫다’, ‘꿰뚫어 보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줄탁통시’는 ‘啐’과 ‘啄’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시간성만을 강조한 말이 아니라, 병아리와 어미 닭이 서로 상황을 꿰뚫어 보는 상호 교감의 감응력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줄탁통시를 하자면 줄탁동시는 당연히 이루어진다.
그러나 줄탁동시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반드시 줄탁통시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줄탁통시의 ‘통(洞)’, 즉 ‘꿰뚫어 봄’의 경지는 천차만별일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선불교에서는 스승과 제자가 서로 교감하는 경지의 만남을 일러 ‘줄탁동시’라고 하지 않고 ‘줄탁통시’라고 하는 것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간절한 마음으로 ‘줄탁통시’를 지향하는 한 교육은 당당할 수밖에 없다. 선생님들이 먼저 당당하게 인품을 닦고 실력을 쌓아 일부 과잉 열성의 학부모들이 보이는 비교육적 극성을 물리치고 떳떳하게 ‘줄탁통시’를 지향하는 교육을 했으면 좋겠다. 오늘, 스승의 날을 계기로 삼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