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 모두 알다시피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이다. 재판부는 이 점을 깊이 인식하면서 역사의 법정 앞에 서게 된 당사자의 심정으로 이 선고에 임하려 한다.”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 전 발언한 내용이다. 실제로 헌법 제1조 제2항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과 그 측근 권력자들에 의해 헌법 질서가 침해됐고, 결국 이 땅의 주인인 국민이 직접 나서 대통령의 잘잘못을 문서로 남기고자 마지막 헌법 수호기관인 헌법재판소의 심판대로 올렸다.
이에 헌재에서는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의 위헌ㆍ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봐야 한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이다”라며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이처럼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헌법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출판업계에서도 이 같은 국민적 관심을 반영하듯, 헌법에 대한 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 중 최근 눈여겨 볼 만한 책은 이석연 변호사(전 법제처장)가 쓴 ‘헌법은 살아있다’이다. 법제처와 헌법재판소에서 15년간 공직에 몸담았던 그는 이 책을 통해 헌법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헌법이 어떻게 살아서 기능 하고 있는지를 담았다.
우리나라 제1호 헌법연구관이기도 한 이 변호사는 ‘헌법은 살아있다’를 통해 헌법이 지배하는 대한민국 사회를 기대하면서 헌법의 정신과 기본 원리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써냈다.
특히 이 책은 헌법의 본질과 원리를 누구보다 명쾌하게 꿰뚫으면서 대통령 탄핵이나 건국절 논란, 개헌을 둘러싼 쟁점 등 우리 사회의 갖가지 민감한 논란거리를 헌법의 틀에 맞춰 명쾌하게 정리한다. 또한 일반 국민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 사건들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를 바꾼 10대 위헌결정 사례를 설명하면서 헌법이 우리의 삶과 어떻게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기능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개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 헌법은 1987년 10월 29일 공포되고 이듬해 2월 25일부터 시행된 이래 30년 가까이 대한민국의 정치권력과 국민 생활을 직접 규율하는 생활규범으로 확고한 자리를 차지했다고 평했다. 하지만 그는 현행 헌법에는 새로운 시대적 흐름과 국민적 여망, 사회적 변화를 담아내기엔 미흡한 점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그중에서도 대통령에 지나치게 집중된 권력과 단임제로 인한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 문제, 여소야대의 분점 정부 출현에 의한 국정의 비효율과 혼란, 지나치게 잦은 선거 주기 등이 현행 헌법 출범 후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정치권에서도 개헌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3당은 대선 투표일에 개헌 국민투표 시행을 목표를 합의했지만 여전한 더불어민주당 측의 반발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또한 개헌 내용에 대한 합의 없이 구체적인 날짜만 먼저 잡아 반발이 큰 상황이다.
저자는 “개헌은 더는 특정 지도자나 정파에 의해 금기시되거나 독점되는 정략적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국가 운영의 틀을 바꿈으로써 국가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가져오는 개헌의 순기능에 주목해야 한다”라며 “지금은 개헌을 통한 국가 통치구조의 대수술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개헌안에 꼭 담아야 할 10가지 핵심도 언급했다. 그는 △수도, 국기, 국가, 국어에 관한 조항 신설 △헌법 총강에 대한민국은 법치주의에 기초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한다는 국가의 정체성 조항과 저항권 조항 신설 △기본권의 신설ㆍ확충 △권력 구조 또는 정부 형태의 손질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제 도입 △국민발안제ㆍ국민소환제 도입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폐지 및 면책특권 제한 △정당의 헌법적 특권 폐지 △대법관ㆍ헌법재판관에 대한 국민심사제 도입 △교육 자치를 포함한 지방자치제도 확대와 보완 등을 주장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 국민의 헌법 의식은 정치인이나 지식인보다 고양돼 있다. 헌법을 살아있는 규범으로 만드는 국민의 헌법에의 의지가 이제 정치를 비롯한 우리 사회를 개혁하고 주도해 나가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