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업계 맏형 격인 한국제약협회가 5년 전 철폐된 임상규제의 부활을 정부에 건의하면서 제약업계가 둘로 쪼개졌다.
쟁점은 지난 2011년 폐지된 ‘공동생동 제한’ 규정을 4개로 다시 제한해달라는 건의다. 공동생동 제한은 제약사가 제네릭 허가 필수 절차인 생물학적동등성시험(생동성시험)을 진행할 때 참여 업체 수를 제한하는 규제다. 지난 2007년부터 5월 2011년 11월까지 공동 생동·위탁 업체 수를 2개 업체까지 제한했다. 그러나 제약업계의 요구와 규제개혁위원회의 개선권고에 따라 폐지됐다.
제약협회가 규제 부활의 배경으로 지목하는 ‘제네릭 난립’은 일리가 있다. 제약협회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공동위탁 생동 규제가 철회돤 2011년말 이후 건강보험 급여목록 등재 의약품 수가 급증했다. 생동성시험 1건당 허가건수는 2010년 1.8건에서 지난해 3.8건으로 크게 늘었다. 생동성시험을 직접 진행한 제네릭 제품마다 약 3개의 제네릭이 포장만 바꿔 허가를 받았다는 의미다. 1개 성분이 51개 이상 품목을 보유한 시장도 2012년 1337개에서 지난해 3492개로 급증했다.
그러나 제네릭 난립의 해결책으로 ‘공동생동 규제 부활’로 제시하는 것은 다소 억지스럽다. 약가제도와 허가제도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제약사들이 저비용으로 제네릭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2년부터 제네릭의 약가 등재 순서에 따라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계단형 약가제도’를 폐지했다. 기존에는 제네릭 진입 시기가 늦을 수록 가격이 떨어지는 ‘계단형 약가제도’를 운영했다. 이에 따라 제약사들은 특허가 만료된지 오래된 시장도 제네릭 발매를 적극적으로 진입했다.
이와 함께 식약처가 지난 2014년 허가용 의약품을 의무적으로 생산해야 하는 규정을 완화하면서 제네릭 진입 장벽이 또 다시 낮아졌다. 제약사들은 적합판정을 통과한 제조시설에서 생산 중인 제네릭을 제품명과 포장만 바꿔 허가받을 때 수수료 90만원 가량만 부담하면 별도의 생동성시험과 허가용 의약품 생산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신규 제네릭을 장착할 수 있게 됐다.
제네릭 난립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면 허가제도와 함께 약가제도도 손을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동생동 규제 철폐에 따른 제네릭 난립’이 윤리경영의 저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제약협회의 시각도 위험한 발상이다. 공동생동 규제가 시행됐던 2007년부터 5월 2011년 11월까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불법 리베이트로 적발된 제약사는 총 33개 업체에 달한다. 한정된 시장에서 영업 중인 업체가 많아질수록 과당경쟁이 펼쳐진다는 주장은 수긍이 가지만 제네릭 난립이 불법 리베이트로 변질됐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
제네릭 개수가 많아지면서 품질저하요인이 발생한다는 주장도 명분이 떨어진다. 정부는 특정 제약사가 같은 제품을 많이 생산할수록 품질관리 능력이 향상된다는 이유로 제약사들의 위수탁 사업을 적극 장려해왔다. 과거처럼 한 제약사가 많은 종류의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는 ‘선택과 집중’에 따라 소수 제품의 생산에 주력하면 품질관리에 공을 들일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이런 이유로 식약처는 지난 2014년 의약품을 생산하는 모든 공장은 3년마다 식약처가 정한 시설기준을 통과해야 의약품 생산을 허용하는 내용의 ‘GMP 적합판정서 도입’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며 제약사들의 품질관리 책임을 더욱 엄격하게 했다. 특히 생동생동 규제 철폐 이후 품질부적합 제네릭이 많아졌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공동생동 규제 강화 요구를 납득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규제 폐지의 배경이 과학적 판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같은 공장에서 찍어낸 똑 같은 약에 대해 임상시험을 여러 차례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에 이 규제는 사라졌다.
과연 공동생동 규제 강화로 수혜를 보는 쪽은 어디일까. 눈에 보이는 것은 생동시험기관이다. 규제가 부활하면 더 많은 건수의 생동성시험을 진행할 수 있으니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생동시험기관은 이번에 건의서를 낸 제약협회의 회원사는 아니다.
업계에서는 제네릭 진입 장벽이 높아지면 이미 기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위제약사들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관측한다. 주로 자본력이 열악한 중소제약사들이 다른 업체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제네릭 시장에 후발주자로 진입하는데 후발주자들의 수가 줄어들면 기존에 구축한 시장을 방어해야 하는 업체들 입장에서는 유리해질 수 밖에 없다. '공동생동규제 부활'은 주로 상위제약사들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여하는 제약협회 이사장단 회의에서 의견이 모아졌다. 제약사들이 제약협회의 건의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유다.
제약협회의 요구대로 제네릭 난립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이미 과학적으로 불합리하다고 결론난 규제를 부활시키지 않고도 허가와 약가제도를 손 보는 방식으로 제네릭 시장 진입 장벽을 높이면 된다.
허가 규정에서는 허가 수수료를 대폭 올리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식약처는 지난 2008년 허가 수수료를 25년만에 인상했지만 미국, 유럽 등 선진 의약품 시장에 비하면 아직 낮은 수준이다.
약가제도도 개편도 고려해볼만 하다. “품목마다 수많은 제네릭이 쏟아지는 이유는 팔아서 남는 게 많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의 공통된 시각이다. 제네릭 약가를 현행보다 조금 낮추면 수익성 감소를 우려한 업체들은 제네릭 시장 진출 꺼릴 수 밖에 없다. 여기에 건강보험 재정 절감 효과도 있다. 계단형 약가제도를 부활하면 후발주자들의 제네릭 가격이 낮아져 전체 제네릭 개수 감소를 기대할 수 있다.
제네릭 난립으로 제약사들의 리베이트 영업이 우려된다면 차라리 더욱 강력한 리베이트 처벌 규정을 도입하면 된다. 시장 경쟁은 자율적으로 맡기되 위법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로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제약협회는 일부 업체들만 실익을 기대할 수 있는 공동생동 규제 철폐만 요구했다. 일부 업체들이 제약협회 건의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유다. 식약처가 제약협회 이외의 3개 제약 단체에 관련 의견을 재차 물어본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