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결과위한 수정계속…정착에 시간필요”
KEB하나은행이 지난 22일 고객 수익률이 좋은 직원들을 대거 승진자 명단에 올린 ‘성과주의’ 중심의 파격 인사에 대해 은행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함영주 하나은행장은 “은행도 연공서열을 파괴한 고객 위주 성과주의를 과감히 도입할 때가 됐다”고 인사배경을 설명했다.
하나은행이 다양한 고과지표 가운데 유독 ‘고객 수익률’만으로 프라이빗뱅커(PB) 11명을 발탁한 인사 실험이 성과연봉제 평가기준을 기존 영업점 단위의 집단성과에서 개인 영업실적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꾸는 신호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5차 협상 뒤 결국 결렬된 금융노조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간 산별교섭이 26일 오후 4시 명동 은행회관에서 재개된다. 양측은 신입직원 처우, 올해 임금인상 여부 등도 다루지만 성과연봉제 도입이 주요 안건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노사는 안건 중에서도 ‘개인’ 성과연봉제 도입을 두고 극명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국내은행은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대 초반 성과연봉제를 도입했으나 이는 영업점 단위의 집단 성과연봉제다. 외환위기 이후 정착된 급여 시스템대로 대부분의 국내은행은 일반직원에게 호봉에 따른 본봉과 영업점 성과에 따라 80~120%로 차등 지급되는 상여금(성과급)을 지급한다. 1~3급의 간부급만 개인평가를 실시해 일부 성과급을 차등화하고, 전반적인 임금체계는 호봉제에 근간을 두고 있어 근속연수가 늘어나면 자동적으로 급여가 올라가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은행업 세후 순이익은 4분의 1로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연평균 인건비가 5.6% 늘어나며 호봉제를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구조라는 주장이 금융당국에 의해 제기된다. 최근 사용자 측을 대표하는 전국은행연합회는 시중은행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여기엔 직원들의 연봉 격차를 최대 40%까지 늘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같은 직급이라도 연봉 차이를 관리자는 30%, 직원은 20%로 한 뒤 격차를 최대 40%까지 늘리겠다는 것으로, 정부가 제시한 금융공기업 기준보다 높다. 전체 연봉 가운데 성과급 비중은 관리자가 30% 이상, 일반 직원은 20%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금융노조는 이와 관련 “개인 성과평가는 평가기준 등이 모호해 도입이 어렵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윤종규 KB국민은행장은 지난 4일 “고비용 인력구조를 개선해 조직 운영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면서 “직원 성과평가에 팀 평가뿐 아니라 개인성과를 포함해야 한다”고 시중은행장 중 처음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공식 언급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얼마 전 “일을 열심히 하는 직원이나 그렇지 않은 직원 모두 똑같은 성과급을 받아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금융당국과 금융사측이 성과연봉제 도입에 강한 의지를 피력하는 상황에서 하나은행이 ‘고객 수익률’에 근거해 영업성과가 탁월하면 연공서열도 뛰어넘는 새로운 인사 패러다임 이슈를 선점하고 나오자 금융권에서는 난감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사실 고객 수익률을 인사평가 기준의 하나로 삼은 은행이 적지 않다. 그러나 아직 초창기인 만큼 제도를 안정화시킬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고객 수익률을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작업이 2년째 이뤄지고 있으나, 직원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보다 객관적이고 공신력 있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수정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객 수익률을 평가에 녹이는 작업이 쉽지는 않으나, 연초부터 개인 성과평가가 우수한 직원들을 깜짝 발탁하는 인사가 은행끼리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