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일본 도쿄(東京)의 금요일 밤은 봄비로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제법 운치 있는 밤이다. 차창 넘어 펼쳐지는 긴자(銀座)의 화려한 밤은 봄비에 젖어 더욱 화려한 색채를 뽐냈다. 피로감에 찌들어가던 기자의 머릿속엔 봄비 내리는 긴자의 밤이 꽤 오랫동안 머물러있었던 것 같다.
“비가 꽤 내리는데. 우산이 필요하겠어요.” 9인승 승합차 운전에 몰두하던 남성이 입을 열었다. 기자의 답변은 “아뇨”였다. 비에 흠뻑 젖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밤이었다. 비에 젖어버린 긴자의 밤거리를 가로지른 승합차는 어느덧 우에노(上野)에 도착했다. 그리고 한 한국인 식당까지 우산 없이 걸었다.
그가 안내한 식당엔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옆 테이블엔 5~6명의 일본인 젊은 남녀가 한국음식에 술 한 잔을 곁들이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온 만큼 조용하고 안락한 자리였으면 하는 바람은 산산이 부서졌다.
“자리를 옮길까요?” 남성의 배려 섞인 질문에 다시 한 번 “아뇨”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처음이라 어색하네요.” 남성이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니켄트골프 일본지사장 이순영(49) 씨다. 일본 센슈(專修)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일본의 유통ㆍ운송회사와 IT 회사를 거쳐 일본에서 골프용품 사업을 시작했다. 올해로 일본생활 26년째다.
그는 지난해부터 니켄트골프의 일본 유통을 맡았다고 했다. 한 용품회사의 지사장이라는 타이틀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 지사장은 많이 다르다. 수입에만 의존해오던 일본 골프용품시장에 수출 물꼬를 튼 주역이다.
2000년대 중반 하이브리드와 파이프 퍼터로 명성을 날린 니켄트골프의 원산지는 미국이다. 그러나 최근 니켄트골프의 국내 수입상인 니켄트골프코리아(대표 박범석)가 아시아 총판 자격을 취득하면서 사실상 국산 브랜드로 재탄생했다. 한국과 아시아에서 유통되는 모든 제품은 한국에서 설계ㆍ디자인하기 때문이다.
니켄트골프코리아는 지난해 말 그 역사적인 첫 모델로 몬스터(드라이버ㆍ페어웨이우드ㆍ하이브리드)와 비엔나(퍼터)를 신제품으로 출시, 본격적인 시장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 지사장은 몬스터와 비엔나의 일본 유통 선봉에 섰다.
그는 까다로운 일본 시장 공략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 지사장은 “니켄트골프는 아직도 유저가 많다. 신상품에 대해서도 상당한 흥미를 가지고 있다”며 일본 시장 성공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쳤다. 이어 그는 “신상품 몬스터 헤드에 도입된 페이스 후방 360도 홈이 가져다줄 반발력 상승효과에도 기대감이 높다”며 제품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다. 한ㆍ일 양국의 미묘한 갈등이 유통시장에서 악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 지사장은 “일본 프로골퍼 후원으로 브랜드 호감도를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적극적인 프로골퍼 마케팅을 통해 (한국산) 니켄트골프에 대한 이질감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주니어 골퍼 후원도 적극 검토 중이다. 그는 “일본에서 발생한 수익은 현지에 일부 환원할 계획”이라며 “그 일환으로 주니어 골퍼 후원ㆍ육성에 기여할 생각”리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우수한 기술력을 강조했다. “니켄트골프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진 일본인이 많다. 그래서인지 이번 신제품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시타 후 반응도 좋아서, 90% 이상은 만족감을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 변화도 긍정적인 요소로 꼽았다.
“한류 영향 때문인지 한국 문화에 대한 거부감도 크게 줄었다. 과거엔 전철 안에서 한국어로 이야기하면 ‘조센징’이라는 말을 들었을 만큼 한국인에 대한 반감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것이 일본 사회에서 뒤늦게 트렌드가 되는 일이 많다. 이젠 (한국 브랜드) 골프클럽도 인정받을 시기가 됐다.” 그의 얼굴엔 자신감이 묻어났다.
한류의 세계화가 무색할 만큼 골프용품시장에서의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는 기를 펴지 못했다. 심지어 국산이란 사실을 표면에 드러내지 못할 때도 많다. 일본 시장에선 더 그랬다. 그래서 이 지사장의 도전이 위대해 보인다. 한국 골프클럽 역사에 유례가 없는 도전이기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