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민은행이 사흘 연속 위안화 가치를 4.66% 평가 절하하면서 중국발 ‘위안화 쓰나미’ 여진이 하반기 증시 변수의 핵으로 떠올랐다.
지난 11일 중국 정부가 기습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1.86% 낮춘 데 이어 12일에도 1.62% 내리면서 국내 증시를 비롯 일본, 홍콩, 인도네시아 등 주요 아시아 증시도 주저앉은 것. 여기에 13일에도 달러·위안화 중간가격(기준환율)을 전날보다 1.11%(0.0704위안) 올린 6.4010위안으로 고시했다. 환율 상승은 위안화 가치가 그만큼 하락했음을 뜻한다.
이에 따라 달러 대비 중국 위안화 가치는 사흘간 4.66% 떨어졌다.
잇단 위안화 절하로 국내외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는 가운데 지난 13일 열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 금리를 현행(1.5%)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수출 경쟁력이나 자본 유출 등 향후 위안화 절하에 따른 파급효과는 복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면서 “원화 환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사흘 연속 위안화를 평가절하면서 시장 내부에서도 이와 관련해 여러 가지 추측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직격탄을 맞는 국내 수출 관련 대기업들의 명암도 크게 엇갈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중국의 위안화 절하 정책 속도와 경기 전망 변화에 따라 국내증시는 물론 신흥국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잇단 위안화 평가절하 카드 꺼낸 중국, 향후 관전 포인트는? = 중국이 내세우는 공식적인 위안화 평가절하 이유로는 경기 부양이 꼽힌다. 그러나 사흘 연속 위안화 고시 환율을 상향 조정하고 신흥국 통화 가치와 주가가 크게 요동치면서 시장 전문가들도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오태동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위안화 절하 배경과 관련, 중국이 환율전쟁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과 함께 더 이상 쓸 경기부양 카드가 없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며 “중국 정부는 금리와 지준율 인하 정책을 사용해 경기 부양을 도모했는데, 환율약세 카드까지 사용할 정도로 실물 경기가 예상보다 더 부진한 것은 아닌지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NH투자증권은 만약 중국이 급격하게 위안화 절하를 유도하면, 여타 신흥국 수출 경쟁력이 꺾여 전반적인 신흥국 경기부진으로 글로벌 전체 무역 증가율이 둔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 연구원은 “12개월 선행 BPS를 기준으로 작성한 KOSPI PBR는 0.95배까지 하락했고, 12개월 BPS로 감안한 PBR 1배는 1950P선”이라며 “현재의 주가가 이미 청산가치 수준까지 하락했다는 점에서 위안화 약세가 현 수준에서 크게 진행되지 않는다면, 주식시장의 추가 하락은 제한적”이라고 덧붙였다.
정하늘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위안화 절하 조치가 경기 부양을 위한 점임을 고려할 때 후속 조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지준율 인하, 그리고 인프라 투자 계획의 구체화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이는 최근 중국의 경기 하방 압력을 완화하고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 7.0% 달성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위안화 절하가 내달 예상되는 미국 금리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관전 포인트다. 현재까지 JP모건, 바클레이즈, 뱅크 오프 아메리카 등 글로벌 IB들 대다수는 9월 미국 금리 인상안에 베팅을 걸고 있지만, 이번 위안화 절하가 미국이나 유럽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위안화 절하로 인한 달러 절상이 미국 인플레이션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매우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개선을 금리인상의 전제 조건으로 보는 연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위안화 절하로 중국 수출이 개선되면 중국 경기 개선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위안화 절하 평가 업종별 옥석 가리기… 한국 증시 앞날은? = 위안화 절하 평가 정책 속도와 경기 전망 변화에 따라 신흥국 앞날도 풍전등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위안화 절하가 제한적 속도를 낸다 할지라도 미국의 출구 전략까지 임박한 상황이라 신흥국에서 글로벌 투자자금의 추가 이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특히 상품 수출 비중이 큰 신흥국 중심으로 부정적 영향이 상대적으로 클 것이라는 중론이다.
각 업종별 타격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위안화 절하의 대표적 피해 업종은 △중국향 매출, 로열티 비중이 높은 의류, 음식료, 게임주 △중국 인바운드 소비와 관련된 화장품, 면세점, 여행 △중국과 경쟁관계에 놓인 제조업, 서비스업이다. 이 중에서도 증권가에서는 화장품, 면세점, 여행 등 이른바 ‘중국 인바운드 소비주’가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정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위안화의 추가 약세가 진행되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중국인들의 해외 소비가 국내 소비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에 중국 미래 수요를 성장동력으로 삼던 중국 인바운드 소비주에 부정적”이라면서 “더욱이 화장품주는 높은 밸류에이션 논란도 겪고 있어 조정 압력에 가장 빨리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증권이 리서치 내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국내 증시 업종별 영향을 조사한 결과 위안화 약세가 심화되고 장기화될 경우 상당수 산업에서 부정적 영향이 클 것으로 집계됐다.
유승민 삼성증권 연구원은 “수출주는 대중국 수출 둔화 및 중국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심화 등이 우려돼 자동차 부품, 조선, 운송, IT HW, 반도체, 철강 등 업종이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면서 “소비 및 레저 관련 섹터인 화장품, 음식료 등은 중국인 여행객들의 구매력 약화 및 중국 시장에서 국내 제품의 경쟁력 약화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을 피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 밖에 이번 위안화 절하가 결국 원화 약세를 동반함에 따라 외국인들의 자금 이탈에 의한 국내 증시의 조정 압력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곽병열 현대증권 연구원은 “과거 2012년 이후 3차례에 걸친 위안화 절하에 따른 국내 증시 반응 사례 3건을 분석한 결과 국내 증시는 보합권 흐름 및 다소 부정적 반응이 관찰됐다”며 “위안화 절하는 곧 중국 수요 둔화를 일정 부분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단기적으로 화장품, 음식료, 의류 등 ‘중국 관련 소비 성장주’의 약세 국면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 국면에서는 원화약세 수혜주 및 중국 현지 생산 체제를 갖춘 자동차, IT주가 대안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중국 내수 관련 경기 부양책을 촉매제로 중국 소비관련 성장주는 안정을 찾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과거 3차례 사례에서도 중국 소비관련 성장주가 안정화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