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불아귀(法不阿貴)가 공직자들이 갖춰야 할 자세라면 왕자무친(王者無親)은 왕이 잊지 말아야 할 말이다. 국법 앞에서는 왕도 사사로운 정으로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 왕의 외척 등이 발호할 때 이런 지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의 특별한 전고는 찾지 못하겠다.
조선 22대 왕 정조가 남긴 ‘일득록’(日得錄)은 좋은 글이다. 일득록은 문자 그대로 하루를 반성하고 그날 얻은 깨달음을 기록한 일기이다. 홍재전서(弘齋全書)에 수록된 이 기록의 훈어(訓語) 5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천도(天道)는 사정(私情)을 두지 않고 오직 착한 사람을 도울 뿐이며 왕자(王者)는 친한 사람을 두지 않고 다만 덕 있는 사람을 신임할 뿐이니 왕도는 단지 천도를 본받을 따름이다.”[天道無私 惟善是輔 王者無親 惟德是諶 王者之道 只是體天] 정조는 이런 자세를 견지하려고 애썼나 보다.
조금 더 읽어보자. “가령 10푼 가운데 9푼이 공(公)이고 1푼이 사(私)라 하더라도 사의 면에서만 판단하게 되고, 9푼이 왕도이고 1푼이 패도(霸道)라 할지라도 패도의 측면에서만 의논하게 되니 공과 사, 왕도와 패도의 구분이 어찌 준엄하지 않은가. 이를 미루어 보면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 게 없다. 그리고 10푼을 기준으로 삼더라도 오히려 1푼이 미진할까봐 두려운데, 하물며 10푼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 경우라면 어찌 지공(至公)한 마음이 순간도 끊임이 없기를 바라겠는가.”[令十分之中 九分是公 一分是私 當以私邊看 九分是王 一分是霸 當以霸邊論 公私王霸之分 顧不嚴歟 推之百千萬事 無不皆然 雖以十分爲準 猶懼一分之未盡 况不以十分爲準 則何望其純不已]
영조는 아들(사도세자)을 죽인 왕이었지만 왕자무친의 자세나 원칙에 의해 그런 일은 한 것은 아니었다. 그 손자가 강조한 왕자무친이어서 의미가 더 있는 것처럼 들린다. fused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