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을 한 사람들이 노래 경연을 펼친다. 복면으로 가려진 출연자의 실체는 알 수 없다. MBC가 설 특집으로 18일 방송한 ‘복면가왕’이다. 출연자들이 복면 하고 노래를 부르는 색다른(?) 장면은 최근 화제가 된 두 여성과 겹쳐진다.
한 사람은 최근 생명 과학자들 커뮤니티인 브릭(Brick)이 뛰어난 연구 성과를 인정해 ‘한국을 빛내는 사람들’에 선정한 금나나(32)다. 또 한 사람은 중국 드라마 ‘서성 왕희지’에 회당 8000만 원을 받고 출연해 한중 양국에서 관심을 집중시킨 스타 김태희(35)다.
금나나와 김태희가 누구이던가. 금나나는 2002년 미스코리아 진 출신의 빼어난 외모로 늘 화제가 되는 미국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과학자다. 김태희는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활동하는 배우로 대중이 가장 예쁜 연예인으로 꼽는 스타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하지만 빼어난 외모를 지녔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외모는 분명 두 사람의 삶과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에선 3월 ‘국립암연구소저널’에 게재되는 ‘성인의 체중증가와 암 연관성에 대한 연구(Adult Weight Gain and Adiposity-Related Cancers)’라는 논문을 비롯한 금나나의 연구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폄하까지 하는 시선도 있다. 그녀가 인정받는 것이 연구 성과가 아니라 외모 덕분이라는 근거 없는 비난까지 나온다. 외모가 적지 않게 금나나의 과학자로서의 본분과 본질적인 부분에 눈멀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KBS 방송문화연구소 조사를 비롯한 외모에 대한 각종 조사에서 가장 예쁜 연예인 1위를 수년째 도맡아 하고 있는 이가 바로 스타 김태희다. 하지만 2001년 영화 ‘선물’로 데뷔한 이래 지난 14년 동안 연기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연기력에 대한 좋은 평가는 받지 못했다. 연기자의 본질인 연기력에 대한 건강한 비판마저 “연기 못해도 얼굴만 예쁘면 되지”라는 댓글의 홍수 앞에 무력해진다.
외모는 이처럼 본질적인 부분을 압도한다. 외모가 개인 간의 우열뿐만 아니라 인생의 성패까지 좌우한다고 믿어 외모에 과도하게 집착하는‘루키즘(Lookism)’은 미국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새파이어(William Safire)의 칼럼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외모가 연애, 결혼 등과 같은 사생활은 물론 취업, 승진 등 사회생활 전반까지 좌우하기 때문에 외모에 목숨 거는 전쟁을 벌이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오늘도 결혼 시장에서 더 나은 배우자와 노동시장에서의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한 전쟁에서 승리하려는 방편의 하나로 외모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외모는 이제 교육, 종교, 재산 등처럼 인간의 불평등을 일으키는 강력한 요소의 하나로 부상했다.
발트라우트 포슈의 주장처럼 뷰티 산업과 매스미디어 등 거대한 사회적 시스템이 외모가 곧 자본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며 외모를 향한 맹목적 숭배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2015년 대한민국은 ‘유미무죄 무미유죄(有美無罪 無美有罪)’사회로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유미무죄 무미유죄’의 외모지상주의 광풍은 삶의 가장 중요한 인성을, 그리고 활동하는 분야에서의 본질적인 실력을 무력화시킨다.
연예인과 일반인들의 평가로 복면을 쓴 출연자들의 노래 경연의 최종 우승자가 나왔다. 복면가왕은 10년간 무명가수로 활동하며 음악을 계속해온 걸그룹 EXID의 솔지(26)였다. 그녀는 “가수 한 지 10년이 됐다. EXID에 합류한 지 3년 됐다. 노래로만 평가받는 거라 떨렸는데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라는 ‘복면가왕’ 우승 소감을 밝혔다. 복면을 쓰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우승할 수 있었을까. 솔지는 복면을 쓰지 않은 상태에서 경연에 참여했다면 노래로만 평가받을 수 있었을까. 복면을 써야만 가장 중요한 본질을 볼 수 있는 세상이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