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훈구(勳舊) 세력이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킴에 따라 그는 유배되었다 한 달 만인 음력 12월 20일에 사사(賜死)되었다. 1482~1519.
☆ 고사성어 / 수청무어(水淸無魚)
‘물이 맑으면 큰 물고기가 살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 너무 결백하면 남이 가까이하지 않음을 비유한다. 반초(班超)는 타림 분지의 오랑캐 땅 50여 나라를 복속(服屬)시켜 서역도호부...
물론 오바마 대통령으로 바뀌면서 수소차는 쏙 들어갔다. 차기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에서 나올지, 국민의힘에서, 아니면 제3지대에서 나올지는 모르지만,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자원외교 같은 꼴이 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우 교수는 조선시대 기묘사화를 본떠 ‘수소사화’라는 표현까지 사용하고 있다. 수소차 속도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
남편은 기계 유씨 유여주(兪汝舟)인데, 남편이 기묘사화(1519)에 연루되자 충남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로 낙향하여 평생을 은거하며 살다가 졸하였다.
임벽당 부부는 집 근처에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소나무, 대나무를 심어 선취정(仙醉亭)과 임벽당(林碧堂)을 조성하였다. 또 배꽃, 복숭아꽃을 심어 놓고 완상하였는데, 그로 인해 마을 이름이 도화동(桃花洞)과...
기묘사화(己卯士禍)와 같이 수많은 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나간 일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이렇게 찌라시가 난무하는 상황의 일부 책임은 사법기관에게 물을 수 있다. 찌라시를 만들고 유통한 사람들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너무 관대하기 때문이다. 특히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 찌라시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했을 때 사법기관에 수사 요청을 해도 수사기관의 문턱을...
기묘사화의 시작이었다.
춘추관(春秋館) 기사관(記事官)이던 참찬 채세영(蔡世英·1490~1568)이 대궐에 달려갔을 때 김근사(金謹思)가 가승지(假承旨)로서 죄안(罪案)을 고치려고 붓을 빼앗았다. 그는 급히 도로 빼앗고 “사관(史官)의 붓을 다른 사람이 쓸 수 없다” 하고는 왕에게 “이 사람들이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죄명을 듣고자 합니다”...
이처럼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원칙론과 과감한 개혁 시도는 반대파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고, 결국 그의 의지는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로 꺾이고 말았다. 남곤, 심정, 홍경주 등이 조작한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으로 그는 39세의 나이에 전라도 능주에 유배됐다가 사약을 받았다. 정치의 전면에 나선 지 불과 4년 만이었다.
율곡 이이는 조광조의 업적을 네...
그래서 그들은 집단적으로 조광조 탄핵에 나섰고 우리가 잘 아는 기묘사화로 그 막을 내리게 된다.
그 결과 조선 중종 때 개혁 드라이브가 주춤거리게 돼 이는 조선 명종 때 척신 윤원형을 탄생시킨 원인이 됐고 그 원인은 을사사화의 단초가됐다. 이 사건을 오늘에 한 번 비교하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하고 싶은...
다만, 기록에 따르면 우백기는 기묘사화 때 화를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대전시립박물관은 지난 1일 대전 서구 갈마아파트 뒷산 단양우씨 세장지에서 조선시대 중종대 인물인 우백기(禹百期)의 미라와 함께 출토된 습의(襲衣)를 수습했다고 3일 밝혔다.
시립박물관은 미라와 함께 발견된 시신을 싼 대렴의(大斂衣)를 긴급 수습하고 나서, 출토복식의 특성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