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기업 계열사간 부당 자금거래를 규제하고 있는 법은 공정거래법과 법인세법이다. 규제는 적정한 이자율을 산출해 자금을 거래하고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선 법인세법은 계열사가 자체 조달금리보다 밑돌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자율을 산출해 다른 계열사에 돈을 빌려주면 부당거래가 되지 않는다. 우량 계열사가 자신들에게 적용되는 금리를 적용해 부실 계열사에 돈을 빌려줘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공정거래법은 계열사가 자체적으로 외부에서 빌려올 수 있는 자금의 이자율보다 낮은 금리로 다른 계열사에게 돈을 빌리면 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개별 정상금리라고 칭한다.
하지만 현재 시장에서는 대기업 부실 계열사들이 공정거래법에 저촉될 수 있는 자금거래를 하고 있는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자본잠식에 빠진 계열사가 낮은 이자로 계열사들에게 돈을 빌려 유동성을 해결하는 사례가 많다. 실제 이투데이가 지난해 금감원 전자공시를 통해 확인한 결과 상반기까지 이뤄진 대기업 비상장 계열사들이 다른 계열사로부터 차입한 금액은 2조3000억원이 넘었다. 이중 1조300억원가량이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부실 계열사들의 거래였다.
또 완전 자본잠식 계열사가 국세청이 고시하는 당좌대출 평균금리보다 낮은 이자로 다른 계열사 자금을 끌어다 쓴 경우도 3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부실 계열사들이 돈을 빌릴 수 없는 은행권 대신 좋은 조건으로 우량 계열사에게 손을 벌리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 내부자금거래를 단속했다는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공정거래법을 통해 고시하고 있는 부당 내부거래 심사 지침에 명시된 개별정상금리 산출에 대한 논란이 많기 때문이다. 대기업 계열사간 부당 내부자금거래를 금지하고 있는 조항이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는 상황인 셈이다. 대기업 부실 계열사가 성장성이 있는 중소기업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는 시장이 공정하다고 볼 수 있을까.
특히 무분별한 대기업 계열사간 자금거래는 부실 계열사에 대한 시장 퇴출을 가로막아 중소기업을 힘들게 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정부는 부당 내부거래 판단 기준을 ‘현저한 유리한 조건’에서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바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쉬운 점은 부당 내부거래 기준을 강화하는 목적이 일감몰아주기에만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부당성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대기업 계열사간 자금거래 실태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