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팬은 아닌데, 앨범은 샀어요!"…요즘 아이돌 앨범, 이렇게 나옵니다 [솔드아웃]

입력 2024-11-0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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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화제 되는 패션·뷰티 트렌드를 소개합니다. 자신의 취향, 가치관과 유사하거나 인기 있는 인물 혹은 콘텐츠를 따라 제품을 사는 '디토(Ditto) 소비'가 자리 잡은 오늘, 잘파세대(Z세대와 알파세대의 합성어)의 눈길이 쏠린 곳은 어디일까요?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연말 가요계가 풍성합니다. 가수 지드래곤이 선공개 곡 '파워(POWER)'를 발매하며 7년 만의 솔로 공백기를 깬 가운데, 블랙핑크 로제와 팝스타 브루노 마스의 듀엣곡 '아파트(APT.)'는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붙박이처럼 지키고 있고, 그룹 에스파가 지난달 발매한 미니 5집 '위플래시(Whiplash)'는 통산 5번째 밀리언셀러를 달성하는 등 각종 신곡과 기록이 쏟아지는 요즘이죠.

가요계를 주름잡는 인기 아이돌의 컴백으로 팬들은 물론 대중의 눈까지 즐겁습니다. 화려한 의상과 콘셉트를 한층 더 부각하는 메이크업, 쉴 새 없는 퍼포먼스까지 눈길을 사로잡지만, 무대 밖의 볼거리도 빠지지 않습니다.

통상 아이돌은 활동과 함께 머천다이즈(MD)를 발매하곤 합니다. 어느새 덕질의 필수 아이템이 된 포토카드(포카)는 물론 키링, 파우치, 가방, 헤어핀, 그립톡, 우산, 다이어리와 각종 필기구까지… 종류도 다양해 다 나열할 수도 없죠.

이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건 '앨범'입니다. 앨범이 아이돌만의 MD는 아닌 데다가 새로운 것도 아닌데요. '팬만 산다'는 인식이 강했던 과거와 달리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저변을 확장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출처=tvN '응답하라 1997', 뉴시스, 어도어 제공)
▲(출처=tvN '응답하라 1997', 뉴시스, 어도어 제공)

풍선·우비에서 응원봉으로…아이돌 굿즈의 변천사

초창기 아이돌 굿즈는 1세대 팀들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2000년 전후 처음 생긴 아이돌 문화를 떠올리면 우비를 입은 채 풍선을 들고 콘서트에 가는 모습이 대표적이죠.

아쉬운 점은 최근과 비교해 MD라고 부를 만한 굿즈가 전무했다는 겁니다. 당시 굿즈는 응원 도구 수준에 그쳤고, 기획사나 공식 팬클럽에서 제작하는 것 역시 사진이나 포스터 정도였죠.

다양한 굿즈가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건 2세대 아이돌부터입니다. 이때 새롭게 등장한 굿즈도 있었는데요. 아이돌이라면 마땅히(?) 출시해야 할 '응원봉'입니다.

K팝 최초의 응원봉은 2008년께 등장한 것으로 봅니다. 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가 당시 소속 가수였던 가수 세븐, 그룹 빅뱅의 응원봉을 출시한 게 가요계 전반으로 확산한 건데요. 특히 빅뱅의 공식 응원봉 '뱅봉'의 초기 버전은 멤버 지드래곤이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돌 응원봉의 시초인 셈인데요. 최근 멤버 대성의 유튜브 채널 '집대성'에서 태양이 "몰랐는데 응원봉이 우리가 시초라더라"고 전하자, 대성이 깜짝 놀라는 장면도 전파를 탔죠.

응원봉뿐 아니라 각종 액세서리, 필기구, 인테리어 소품 등이 공식 MD로 출시됐습니다. 소속 연예인을 캐릭터화한 굿즈도 선보였는데요. 아예 지식재산권(IP)을 등록한 캐릭터도 많습니다. YG엔터테인먼트의 '크렁크'가 대표적인데요. 조금은 험상궂은(?) 눈매, 힙한 옷차림의 하늘색 곰 캐릭터인 크렁크는 2013년 당시 소속 가수였던 이하이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처음 얼굴을 알렸습니다. 이후 빅뱅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은 물론 기업들과 컬래버레이션 상품을 출시하거나 행사를 여는 등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굿즈가 돈이 된다'는 공식이 새롭게 떠올랐습니다. 콘서트에선 언제나 MD 판매 부스를 볼 수 있고, 여기엔 긴 줄이 서 있죠. 티켓 판매 수익을 MD 판매 수익이 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MD는 K팝 아티스트의 주요 수익원 중 하나인데요. 소속사에서도 직접 굿즈를 출시하고 온·오프라인 매장을 운영, 타 브랜드와 협업하거나 백화점에도 입점하는 등 '돈벌이'(?)에 본격적으로 나섰죠.

아예 캐릭터 IP 기획에 아이돌이 참여하면서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습니다. IPX(옛 라인프렌즈)는 방탄소년단(BTS) 캐릭터 'BT21'로 '대박'을 친 후 디지털 IP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이끌고 있습니다. BT21은 멤버들이 직접 디자인에 참여하면서 글로벌 인기 캐릭터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지난해 4월에는 멤버 제이홉의 캐릭터 '망'이 6년 만에 가면 벗은 얼굴을 공개해 팬들 사이 화제가 되기도 했죠.

여기에 더해 '일코(일반인 코스프레)'가 가능한 상품도 속속 출시됐습니다. 팬들만 알아볼 수 있는 세심한 아이디어가 돋보인 MD들도 사랑받기 시작한 겁니다.

또 팬들이 직접 제작하는 '비공굿(비공식 굿즈)'의 인기도 높아졌는데요. 팬들이 직접 도안을 만들어 X(옛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구(공동 구매)를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외모를 본뜨거나 상징하는 동물 모양으로 만드는 솜인형이 대표적인데요. 아이돌 인형 옷 전문 업체가 생기거나, 인형 매무새를 다듬어주는 '인형 경락', 털을 말끔하게 정리해주는 '인형 미용실' 등 관련 산업과 서비스도 급속도로 늘어났습니다.

▲(출처=카리나·로제 인스타그램, SM엔터테인먼트·어도어 제공)
▲(출처=카리나·로제 인스타그램, SM엔터테인먼트·어도어 제공)

Z세대 겨냥해 쏟아지는 앨범…"팬 아닌데, 예뻐서 샀어요"

이 같은 굿즈들은 아티스트의 개성과 이미지에 충실합니다. 팬덤이 사용하는 만큼 팬덤의 특성도 잊지 않죠. 디자인에 팬덤 이미지를 활용하거나 아예 이름을 팬들의 공모를 통해 정한 사례도 숱합니다.

그중에서도 아티스트 고유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데 특화된 상품은 앨범이 아닐까요? 아이돌 팀이 매번 차별화된 콘셉트를 들고 컴백하는 만큼, 이들의 앨범은 발매 때마다 화제의 대상이 됩니다. 타이틀곡과 수록곡, 그리고 이를 포장하는 앨범 디자인과 패키징, 그리고 구성품까지 말이죠.

과거 아이돌 덕질을 해본 이들이라면 최근 아이돌 앨범을 보고 기함할지도 모릅니다. 크기도, 무게도, 구성품도 모두 예전과 달라졌기 때문인데요. 심지어는 버전도 여러 개라 '대체 뭘 사야 하는 거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최근 앨범 대란의 주인공으론 올해 가요계를 꽉 잡은 그룹 에스파를 가장 먼저 꼽을 수 있습니다. 5월 발매한 첫 정규앨범 '아마겟돈(Armageddon)'을 시작으로 7월 일본 데뷔 앨범 '핫 메스(Hot Mes)', 지난달 발매된 카리나, 윈터, 닝닝, 지젤의 솔로곡, 또 같은 달 말 발매된 미니 5집 '위플래시'까지 히트곡 수부터 남다릅니다.

'굿즈 맛집' SM엔터테인먼트답게 이들의 MD는 팬들을 홀렸습니다. 특히 '아마겟돈' 앨범은 CD플레이어(CDP) 버전으로도 출시되면서 대중의 눈길까지 사로잡았는데요. 정가가 18만 원대로 고가지만, 이 앨범은 품절 대란을 불렀죠. 다른 CD도 재생할 수 있는 데다가 블루투스 기능이 탑재돼 있고, 제조사가 추억의 '미키마우스 mp3'로 유명한 아이리버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팬들은 물론 레트로 감성에 흠뻑 취해 있는 대중까지 공략한 겁니다. 실로 온라인상에선 '에스파의 열성 팬은 아니지만, 앨범을 샀다'는 후기 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평균 연령 18.3세로 멤버 전원이 Z세대NCT 위시의 앨범은 '젠지력'이 가득합니다. 3월 발매된 데뷔 싱글 '위시(WISH)'는 위츄(WICHU) 버전이 특히 인기가 좋았습니다. 이 앨범은 인형 키링 안에 NFT 칩이 들어 있어 전용 앱을 스마트폰에 깔고 칩을 스마트폰 뒤에 가져다 대면 음악을 재생할 수 있습니다. 귀여운 디자인,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매력, 무엇보다 백꾸(가방 꾸미기) 유행이 이어지면서 팬이 아닌 이들도 애용하는 '젠지템'이 됐죠.

미니 1집 '스테디(Steady)'도 레트로 열풍의 중심이었던 디지털카메라를 연상케 하는 버전부터 스마트 키링 등 버전으로 출시되면서 젠지 감성의 끝을 보여줬습니다.

뉴진스는 일본 데뷔에 발맞춰 팝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와도 협업 소식을 전한 바 있습니다. 무라카미는 일본 데뷔 싱글 '슈퍼내추럴'(Supernatural) 뮤직비디오는 물론 실물 앨범에도 참여했는데요. 당시 뉴진스 앨범은 드로우스트링 백 버전, 크로스 백 버전, 위버스반 총 3가지로 출시됐습니다. 다채로운 색상의 협업 캐릭터가 그려져 팬들은 물론 예술계까지 들썩이게 했습니다. 앨범 발매 이후 앨범 구성품인 가방을 좀 더 튼튼한 끈으로 수선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이들도 볼 수 있습니다.

로제는 더블랙레이블에서 새롭게 둥지를 튼 이후 처음으로 발매한 곡 '아파트'로 전 세계를 강타했는데요. 이 곡이 수록될 앨범이 또 한 번 대중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로제는 최근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자신이 발매할 첫 정규앨범 '로지(rosie)'의 실물을 공개했습니다. 앨범은 마치 레코드판(LP)을 연상케 하는 큼지막한 크기로, 12종의 커버 사진이 포함돼 있어 팬들이 원하는 사진으로 앞면을 꾸밀 수 있는 게 특징입니다. 로제 특유의 빈티지한 감성까지 더해진 이 앨범은 "소장 가치가 있다"는 호평과 함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면서 공구까지 열렸습니다.

"당장 앨범을 발매하라"는 대중의 겁박(?)을 듣고 있는 지드래곤이 추후 선보일 앨범에도 귀추가 주목됩니다. 지드래곤은 2017년 발매한 미니앨범 '권지용'을 CD가 아닌 USB로만 출시해 높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당시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는 이를 '음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내려 갑론을박을 불렀죠. 이때 지드래곤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누군지도 모르는 어떠한 사람의 결정에 따라 한 아티스트의 작업물이 그저 '음반이다, 아니다'로 달랑 나뉘면 끝인가"라며 "LP, 테이프, CD, USB 파일 등 포인트가 다르다. 정작 제일 중요한 것은 겉을 포장하고 있는 디자인적인 재미를 더한 그 형태가 아니라 그 누가 어디서 틀어도 그 안에 담겨 있는 음악, 내 목소리가 녹음된 바로 내 노래"라고 강조했는데요. 이번에는 또 어떤 실물 앨범의 '혁신'을 선보일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일본 도쿄의 한 길거리에 K팝 아이돌 그룹의 앨범이 대량으로 버려져 있다. (출처=X 캡처)
▲일본 도쿄의 한 길거리에 K팝 아이돌 그룹의 앨범이 대량으로 버려져 있다. (출처=X 캡처)

'예쁜 쓰레기' 비판도…'친환경' 더하는 소속사, 쓴소리는 'ing'

아이돌 앨범에 호평만 나오는 건 물론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국내 음반업계는 신랄한 비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주요 맹점 중 하나는 '앨범깡'이죠.

앨범깡은 음반 구성품 중 하나인 '랜덤 포카'에서 시작된 문화로, 원하는 포카를 얻고자 같은 앨범을 수십~수백 장 구매해 뜯는 행위를 말합니다. 앨범에 아이돌 멤버들의 포카가 무작위로 들어가 있고, 그 종류가 수십 개에 이르는 탓입니다.

또 앨범 판매량이 초동 등 아이돌 그룹의 '성적'으로 이어지다 보니,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높은 순위에 올리기 위해 음반을 소비합니다. 여기에 구매량이 많을수록 팬 사인회 등 행사 당첨 가능성도 커지면서, 적지 않은 팬들이 같은 앨범을 수백 장씩 사고 버리는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거죠.

다만 타 연령층보다 친환경 소비의식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Z세대가 음반업계의 주 소비자가 되면서, 음반업계에도 변화가 체감됩니다. 자신의 소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두는 Z세대인 만큼, 친환경과 관련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기획사들도 친환경 전환에 초점을 두는 추세입니다. 앨범 소재는 친환경으로 바꾸고, 패키징을 최소화하는 식으로요.

SM엔터테인먼트는 진작 국제산림관리협의회(FSC) 인증 종이 및 콩기름 잉크 사용 인쇄 등을 통해 국제표준인증기관 BSI(영국왕립표준협회)로부터 ISO 14001(환경경영) 인증을 취득했습니다. 국내 기획사 중 최초입니다. YG엔터테인먼트는 2022년 하반기 친환경 앨범 제조 자회사 '포레스트 팩토리'를 설립해 친환경 인쇄·제조 기술을 활용한 앨범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최근 발매된 베이비 몬스터의 첫 정규앨범도 친환경 기술을 활용해 만들었죠. 하이브는 디지털 앨범의 플라스틱 소재를 종이로 바꿨고, 앨범 케이스나 포카는 생분해가 가능한 소재로 전환했습니다. 위버스반은 실물 CD가 없고, 전용 앱에서 음원 및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 QR 코드를 대신 삽입했죠.

그러나 이 같은 친환경 노력이 그린 워싱(위장 환경주의)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적지 않은 팬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 전 종류를 구매합니다. 기존 앨범 버전들에 친환경 버전까지 출시되면, 팬 입장에선 결국 사야 하는 앨범 개수만 늘어나는 셈이죠. 친환경 앨범만 내던가, 발매하는 앨범 버전 수를 줄이지 않는 이상 친환경에 특별한 도움을 주진 못하는 데다가 팬들의 소비만 되레 늘린다는 지적입니다.

'앨범을 여러 장 사는 팬들이 문제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아이돌 문화를 생산하고 유지하는 주체는 기획사입니다. 팬들은 기획사의 '기준'에 맞춰 좋아하는 아이돌의 행사에 가기 위해, 이벤트 당첨을 위해, 소장가치가 높은 MD와 포카를 갖기 위해 같은 앨범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거죠.

지난해 K팝 해외 매출액은 사상 처음으로 '1조 원'을 기록했습니다. 영역별로 보면 해외 공연 매출액(5885억 원·47.5%) 다음으로 음반류 상품 수출액(3889억 원·31.4%)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죠. 앨범의 혁신적인 디자인, 특별한 컬래버레이션 등도 중요하지만, '예쁜 쓰레기'라는 맹점을 상쇄할 고민도 절실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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