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467년부터 무로마치 막부가 몰락한 1573년까지 106년 동안 무려 70여 개의 국가로 쪼개져 동족상잔의 전란을 겪었다. 영주의 자식들이 인근 ‘구니(국가의 의미)’의 인질로 흩어져 억류되고 부자가 서로에게 칼을 겨루는 이런 난세를 통일한 인물이 오다 노부나가이다. 그는 칼과 창 중심의 전국시대 전쟁에 처음으로 ‘뎃뽀(총)’를 도입해 경쟁자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간다. 오다 노부나가는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에게 반기를 들었던 승병집단인 히에이잔 젠라쿠지를 토벌하면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몰살시키도록 명령했다. 기록에 의하면 무려 4000명의 승병과 민간인들이 노부나가의 군대에 의해 학살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천재적인 전쟁 영웅 노부나가도 적이 아닌 자신의 부하였던 아케치 미쯔히데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혼노지의 변’으로 불리는 아케치의 반란이 그것이다. 고작 100여 명의 군사가 지키던 혼노지라는 절에서 무려 1만2000명의 아케치 부대의 공격을 받자 스스로 절에 불을 질러 자결한다. 로마의 시저는 양아들 브루투스에 의해, 독재자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살해됐듯이 역사는 항상 같은 교훈을 준다. 어제의 동맹군이 오늘의 적이라고.
콘텐츠 산업의 플랫폼 전쟁도 일본의 전국시대처럼 변모하고 있다. ‘전국시대’의 불을 댕긴 것은 빅히트이다. 지난 9월 출범한 빅히트의 엔터 플랫폼 ‘위버스’는 기존 강자인 네이버 브이라이브를 위협하고 있다. 위버스의 국내 월 활성 이용자 수(MAU)는 41만2000명에서 49만2000명으로 19% 늘었지만, 브이라이브는 179만4000명에서 146만2000명으로 22% 줄었다.
BTS라는 제품과 네이버의 브이라이브는 제작과 유통이라는 협력 관계였다. 위버스의 설립은 이런 협력 관계에서 벗어나 생산과 유통을 통합하겠다는 의도이다. 이를 학술적으로는 ‘전방통합’이라고 부른다. 기존에 생산만 했던 기업이 유통까지 확장하는 개념이다. 이렇게 되면 네이버 같은 유통기업은 큰 위협을 느끼게 된다. 네이버가 SM엔터테인먼트에 1000억 원을 투자한 것은 그런 위기의식의 발로이다. 유통기업이 생산공장을 매입하는 것과 유사하다. 네이버는 거꾸로 빅히트의 영역으로 공격해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SM도 위협을 느끼는 것은 네이버와 동일하다. 실수해 한 발 삐끗하면 위버스라는 플랫폼에 제품 공급자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빅히트 천하가 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SM 같은 ‘공장’들이 네이버 같은 유통 플랫폼과 제휴하고 있다.
빅히트의 선전은 게임 지식재산권(IP) 확보에서 고전하고 있는 넷마블에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위버스를 기반으로 빅히트의 신진 아이돌이 성공할수록 엔터 IP의 확보가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지각변동에 위기의식을 느낀 엔씨는 지난 8월 자회사 ‘클렙’을 설립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한다고 발표했다.
플랫폼 전략의 원조는 게임이다. 한게임과 같은 포털은 대표적인 플랫폼이었다. 한게임의 노하우를 계승한 카카오도 플랫폼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대규모 유저풀을 형성했고, 이를 기반으로 카카오게임즈,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지 등을 차례차례 론칭해 성공시켰다. 게임의 범주만으로 한정한다면 엔씨도 플랫폼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리니지 팬덤을 기반으로 리니지2, 리니지M, 리니지2M 등을 차례로 탑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 전쟁은 글로벌 차원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한국이 강세였던 PC 온라인게임에서 한국의 게임사는 ‘스팀’이라는 미국 플랫폼에 편입돼 가고 있다. 이미 모바일게임이 구글과 애플의 생산공장으로 전락했듯이 PC온라인 게임도 스팀에 종속돼 가고 있다.
플랫폼은 영토확장을 하다 보면 결국 다양한 영역에서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구글과 아마존은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였지만 유튜브와 트위치라는 동영상에서 이미 격전을 벌이고 있다. 아마존이 상품 검색에서 구글을 능가한 지 오래다. 이런 국내와 글로벌 시장의 플랫폼 전쟁에서 한국의 게임사는 생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