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김포시 월곶면에 위치한 공장에서 만난 신경옥(54) 세신산업 대표는 단단한 아랫입술을 가진 사람이었다. 여상을 졸업한 후 평범한 가정주부 생활을 하던 신 대표는 1991년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시장 한 귀퉁이에 ‘은성상회’라는 주방용품점을 열고 장사판에 뛰어들었다. 2003년 ‘세신산업’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주방용품 제조업으로 판을 키우기 전까지 12년 동안 그는 타고난 사업수완으로 작은 소매점을 연매출 100억원 남짓의 유통업체로 몸집을 불렸다.
신 대표는 세신산업이 연매출 210억원의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안착한 지금도 큰 유모차를 끌고 다닌다. 자식 같은 프라이팬과 냄비들이 가득 담긴 커다란 여행가방이 그것이다. 자신의 몸집보다 큰 여행가방을 끌며 홀로 전 세계 전시회와 바이어들을 찾아다닌다는 그는 “영업이 체질인 것 같다”며 웃었다. “미국과 유럽 곳곳의 전시회, 제품설명회를 수없이 돌아다녔다”는 그는 “바이어들이 각 도시에 흩어져 있는 미국에서는 보따리 장사꾼처럼 가방을 싸들고 회사들을 일일이 방문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고된 일정을 마친 후에도 귀국한 바로 다음날 누구보다 먼저 출근하는 이가 신 대표다.
그는 회사 매출의 절반 이상을 수출에서 만들 정도로 수출에 힘쓰고 있다. 2012년 수출 500만 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수출 1000만 달러를 달성했다. 2003년 이전까지는 중간 벤더를 통해 간접적으로 수출을 해오던 세신산업은 2003년부터는 해외영업팀을 꾸려 본격적으로 수출 문을 열어제쳤다. 신 대표가 앞장서 전 세계를 다니며 바이어들을 발굴했다. 신 대표는 “철판을 프레스로 찍어 만드는 판재 공법의 프라이팬이 주류인 유럽 프라이팬들은 무겁기 때문에 아시아 요리에 어울리지 않았다”며 “세신산업은 녹인 알루미늄을 금형틀에 부어 주조하는 다이캐스팅 공법을 사용한 프라이팬을 앞세워 미국와 유럽 내 아시아인 수요와 동남아시아 시장을 공략했다”고 귀띔했다. 현재 세신산업은 미국과 중국, 중동과 동남아 시장에 고른 비중으로 수출 물량을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사태가 터져 중국 판로가 일부 막혔지만 다른 지역을 통해 사업을 빨리 추스를 수 있었다.
신 대표는 제조 부문이 안착한 후에도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유통 분야로 발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이날 찾아간 월곶 본사는 창고와 신공장 증축이 한창이었다. 지치지 않고 사업을 넓혀온 비결에 대해 그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야 말로 곧 신용이고, 당장의 수익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지금까지 거래업체에 구두 약속까지 지킬 정도로 단 한번도 약속을 어겨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여성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예전에는 사법고시 합격생이 대부분 남성이었는데 이제는 여성이 추월했다고 하더라. 기업 분야도 앞으로는 여성 사장님들이 더 많아지고 일등 기업을 만드는 날이 올 것이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실력이 통하는 사회 분위기가 마련됐으니 열정을 갖고 당당하게 나서 하고 싶은 일과 이야기를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