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풍경] 강원도 감자와 제주도 감자

입력 2016-02-19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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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소설가

감자는 어느 철에 수확할까. 며칠 전 강원도 고향 사람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길가에서 파는 감자 무더기를 보았다. 막 밭에서 캐 온 듯 아직 마르지 않은 검은 흙이 묻어 있는 감자였다. 나는 예전 강원도에 살던 시절만 생각하고 저 감자는 하우스에서 키운 감자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몇 년 전까지 강원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마을 이장 일을 보았던 후배가 하우스 감자가 아니라 노지[맨밭]감자라고 했다. 겨우내 강원도의 언 땅만 생각하고, 아니 지금 철에 어떻게 노지감자가 나오느냐고 하니까, 강원도 감자가 아니라 제주도 감자라고 했다. 강원도 감자는 봄에 씨를 내는 데 비해 제주도 감자는 봄감자도 있고, 가을감자도 있고 하우스에서 재배하는 겨울감자도 있다고 했다.

고추는 따뜻한 지역에서 잘 자란다. 많은 사람들이 고추가 일년생 식물인 줄 알지만 늦가을 서리가 내릴 때 따뜻하게 비닐하우스를 지어주면 겨울에도 계속 자라고, 고춧대도 팔뚝처럼 굵게 키울 수 있다. 추위에 약한 식물이라 서리만 내리면 바로 시들어버려 우리 생각에 고추가 일년생 식물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거기에 비해 감자는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란다. 강원도 대관령이 감자가 잘 되는 것도 그래서이다. 봄에 심은 감자는 초여름에 꽃을 피워 기온이 30도 이상 올라가면 그대로 순이 죽어버린다. 똑같이 봄에 심은 감자여도 대관령 아래쪽 감자는 여름에 캐고, 날씨가 서늘한 대관령 위쪽 감자는 가을에 캐는 것도 그래서이다.

그중 제주도의 가을감자는 말 그대로 가을에 씨를 내어 밭에서 겨울을 보낸 다음 이른 봄에 수확한다. 자꾸 감자씨라고 말하니까, 감자꽃에서 나는 열매에서 딴 씨앗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감자씨는 감자꽃에서 나는 씨앗을 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땅 속에 있는 감자의 눈을 따서 거기에서 싹을 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좁다고 하지만 감자씨를 봄에 심는 곳이 있고 가을에 심는 곳이 있다면 그렇게 좁은 땅만도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날 하루 종일 어떤 화두처럼 감자에 대한 생각을 했다. 지금은 농사법도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 같으면 요즘이 바로 밭에다가 감자 거름을 한창 낼 때이다. 겨우내 매일 외양간 바닥에 깔아주었던 짚을 두엄과 함께 모아 쌓아두었다가 그걸 봄에 감자를 심을 밭으로 져 나른다.

내 기억 속의 감자 농사는 순전히 등짐 농사였다. 비료를 뿌려도 기본적으로 퇴비 없이는 농사가 안 됐다. 감자 열 가마니를 수확하는 밭이라면 그 밭에 져 날라야 하는 감자 거름은 그것의 두 배 이상이어야 했다. 그러니까 감자 열 가마니 수확을 하자면 지금부터 미리 부지런히 감자 거름을 감자 스무 가마니의 무게 이상 산 너머 밭에 등짐을 져 날라야 한다.

벌써 삼사십 년 저편의 이야기이지만 대관령을 중심으로 그 아래쪽에 사는 사람들은 학교를 다닐 때 농촌에 사는 아이들은 대부분 감자를 팔아서 여름 학비를 냈다. 돌아보면 어른들이 우리를 그렇게 공부시켰다. 그렇게 일 속에서 평생 고생만 하다가 이미 돌아가셨거나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등이 굽은 모습으로 고향의 옛집을 지키고 계시는 것이다.

저 멀리 봄이 오고 있는 길거리에 쌓아놓은 감자 한 무더기 속으로도 우리의 인생은 지나간다. 시간도 무심하고 야속하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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