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마오쩌둥과 덩샤오핑ㆍ장쩌민ㆍ후진타오 등 중국 국가주석 대부분이 훙치를 탔다.
차 뒤 트렁크 리드에 붙어있는 브랜드 이름 ‘紅旗(훙치)’는 마오쩌둥의 친필로 브랜드 로고로 만들었다는 후문도 이어진다.
영국 브랜드인 롤스로이스를 닮은 앞모습을 비롯해 두터운 C필러 등을 갖춰 고급차가 지녀야 할 요소를 두루 갖춘 디자인으로 평가를 받는다....
그러면서 “과거 후진타오는 평생 중국 지도자로 머물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이를 통해 미국과의 관계는 지속해서 새로워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다음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릴 예정인 미·중 정상회담을 지금의 얼어붙은 분위기를 깰 좋은 기회로 봤다. 클린턴 전 장관은 “확실히 신뢰를 구축할 기회”라며 “훨씬 더 많은 상호작용이 계속해야 한다”고...
후진타오 전 주석, 화환 보내 조의
고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의 영결식과 화장(火葬)이 2일 베이징에서 진행됐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진핑 국가주석은 이날 베이징 바바오산 혁명공원에서 엄수된 리 전 총리 영결식에 당과 국가 최고 지도자들을 이끌고 조의 방문했다.
시 주석은 공산당 깃발로 덮인 고인의 시신 앞에서 세 번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리 전...
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한 뒤 같은 공청단인 후진타오 전 주석의 총애를 받으며 강력한 주석 후보로 부상했다가 최종적으로 총리에 오르는 데 그쳤다. 시 주석이 취임한 2013년부터 지난 5월까지 약 10년간 ‘중국 2인자’로서 국무원 총리직을 수행하며 중국 경제를 이끌었다.
리 전 총리는 시 주석 집권 전 주석직을 놓고 경쟁했었다. 이에 시 주석 임기 초기에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분명한 것은 중국이 후진타오 전 주석 시절부터 가장 중시해 왔던 G20의 의미가 퇴색했다는 것이라고 닛케이는 짚었다.
첫 G20 정상회의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1월이었다. 아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각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였다. 세계 경제 대공황 위기 속에서 열린 회의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은 단연...
덩샤오핑을 비롯해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해왔다. 중국경제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자신감을 얻은 시진핑의 중국은 2015년 전인대(全人大)에서 ‘중국제조2025’계획을 발표하면서 미국의 위기의식을 높여 결국 미중 무역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전 세계 제조업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이 차세대정보기술과 제조업 결합을...
후진타오 전 주석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4조 위안(약 732조 원)의 공격적인 경기부양책을 내놓아 중국은 물론 한국 등 여러 나라가 침체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반면 시진핑 주석은 경제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있어서 시장에 실망감을 계속 안겨주고 있다. 작금의 부동산발(發) 경제 위기는 물론 ‘일대일로’를 둘러싼 각종 논란, IT 기업에...
등으로 치료를 받다가 지난달 30일 낮 12시 13분께 상하이의 한 병원에서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89년 톈안먼 사태로 자오쯔양 당 총서기가 실각하자 같은 해 6월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됐다.
2002년 후진타오 전 주석에게 당 총서기 자리를, 2003년 국가주석 자리를 물려줬지만,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는 2005년까지 유지하며 막후 실력자로 역할을 했다.
앞서 장 전 주석에 대한 화장식이 전날 시진핑 주석을 포함한 현직 최고지도부 인사들과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등이 참가한 가운데, 베이징 바바오산 혁명공원에서 엄수됐다. 바바오산 혁명공원은 공산당 지도부 인사들이 영면에 드는 곳이다. 장쩌민 전 수석의 시신이 병원에서 공원으로 이송됐던 전날 오전에는 주변 일대에 전면 교통 통제가 이뤄지기도 했다.
시...
장 전 주석은 후임인 후진타오 전 주석이 자신의 후계로 리커창 총리를 밀자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파벌을 견제하고자 시 주석을 밀었다. 그러나 시진핑이 집권하고 나서 강력한 반부패 운동을 펼치면서 상하이방이 몰락하는 것을 쓸쓸히 지켜봐야 하기도 했다.
공과가 극단적으로 나뉘지만, 장 전 주석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지금의...
2005년 4월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 주석은 대만의 롄잔(連戰) 국민당 주석과 양안 분단 후 첫 국공 회담을 가졌고, 이때 판다 한 쌍을 선물하겠다고 밝혔으나 당시 대만 집권당인 민진당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후 친중국 성향의 마잉주 총통이 집권한 뒤인 2008년 12월이 되고서야 판다는 대만으로 가게 됐다. 판다의 이름은 2006년 중국 누리꾼들의 투표로...
모든 것이 잘 짜인 각본처럼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던 잔치에서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장면은 후진타오의 퇴장이었다. 시진핑의 눈길 한 번에 2003년부터 10년간 중국을 통치했던 79세의 전임 주석이 회의장에서 쫓겨났다. 후진타오가 누구인가. 칭화대학을 나온 공청단 출신으로 기술발전을 중시하는 과학적 발전관을 창시했고, 시진핑 사상인 공동부유의 밑거름인...
2002~2012년 중국을 이끈 후진타오 전 주석이 끌려나가다시피 퇴장한 것이다.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은 22일 최종 투표가 진행되기 직전 당 직원들에 이끌려 나갔다. 해당 영상을 보면 후진타오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옆자리에 있던 시 주석과 리커창 총리에 뭔가를 묻기도 한다. 둘은 고개를 끄덕였고, 시 주석은 후진타오가 서류를...
중국 소셜미디어·언론에서 관련 영상·사진 사라져관영 신화통신은 트위터에 영문으로 해명
중국 공산당 제20차 당 대회에서 후진타오(79) 전 국가주석이 돌연 퇴장당하는 듯한 모습이 카메라에 담겨 논란이 되자 중국 내 소셜미디어와 언론 등 인터넷상에서 해당 영상과 사진이 완전히 삭제됐다고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판...
전날 당대회 폐막식 도중엔 공청단 출신인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이 중앙위원 명단에서 떨어진 리 총리에게 인사하며 갑작스럽게 자리를 떠나는 장면도 포착됐다. 일각에선 시 주석이 공청단 출신들을 외면한 데 따른 불만 표출로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관영 신화통신은 트위터 영문 계정을 통해 “그는 행사 중 건강이 좋지 않아 회의장 옆 방으로 이동해 휴식을...
장쩌민·후진타오 시절부터 자리했던 서열 5위 왕후닝 당 중앙서기처 서기와 자오러지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는 이번에도 중앙위원 명단에 포함돼 상무위원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이날 오후 자신을 포함해 최종 결정된 상무위원 7명을 소개하고 시진핑 3기에 관한 전망과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앞서 2017년 열린 직전 19차 당 대회 때는 당장에 '시진핑 신시대중국특색사회주의 사상'이 마르크스레닌 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3개 대표 중요사상(장쩌민), 과학발전관(후진타오)과 더불어, 당의 행동 지침 중 하나로 명기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시진핑 주석은 폐막 연설에서 "당 중앙의 권위와 집중통일영도를 수호하고 정치 규율과 정치 규칙을...
후진타오(79) 전 중국 국가주석이 2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폐막식 도중 갑자기 퇴장했다.
후 전 주석은 이날 오전 11시 15분(현지시간) 중국 내외신 취재진이 인민대회당 만인대례당에 입장할 당시 수행원으로 추정되는 한 남성과 대화하고 있었다. 우측에는 시진핑 국가 주석이, 좌측에는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
후임 최고 지도자가 등극하는 당 대회 때 차기 중앙위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던 전임 후진타오, 장쩌민 전 주석의 사례에 비춰볼 때 시 주석이 20기 중앙위원 명단에 포함된 것은 최고 지도자 자리를 유지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반면 리 총리와 왕 주석, 리 상무위원장, 한 총리 등 4명은 명단에 포함되지 않아, 정치국 상무위원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에 따라 차기...
이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후진타오 전 주석과 원자바오 전 총리 등 10명 이상의 주석단 원로가 당대회 개막식에 참석했지만, 장 전 주석과 주룽지 전 총리 등 일부 원로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주석단 상무위원은 정치국 상무위원 또는 당내 상위 25위 정치국원을 지낸 원로들로 구성되며 공식적인 영향력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