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 그러니까 이게 이제 항우여 비대위원장이 두 가지 얘기를 한 건데 하나는 항우여 비대위원장은 당대표가 자기가 나가는 선거, 대선이죠. 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를 갖고 경선에 참여하는 건 그건 옳지 않다. 라는 게 당원의 취지, 그게 해서 당권 대권 1년 6개월 조항에 나온 거잖아요. 박근혜 대표가 이거 받아들인 것 아닙니까? 그전에 이해창 때는, ys 상임...
사무총장 맡았던 2014년에 항우여 대표 시절에 사무총장을 했는데 세월호가 터졌지만 그래도 상당히 선방을 했고요. 그때 뭐 이제 남경필, 원희룡 이런 분들 다 영입했고 그리고 그 중간에 7ㆍ30 보궐선거가 있는 사이에 지방선거와 그 사이에 딱 전당대회가 있어서 김무성 대표로 바뀌었는데 김무성 대표가 사무총장을 그대로 유임시켜서 보궐선거까지 치르게 해요....
항우(項羽)의 부하 장수이자 계포(季布)의 외숙부인 그가 유방(劉邦)이 곤경에 빠져 있을 때 더 공격하지 않고 군사들을 이끌고 되돌아갔다. 그로 인해 살아난 유방이 후에 “그때 정공이 좀 더 나를 공격했으면 나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고 항우의 실패는 없었을 것인데, 항우의 신하로서 충성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짓을 했으니 너는 불충한 놈이다’라며...
항우(項羽)에게 쫓긴 유방(劉邦)이 휴전을 제의했으나 항우의 참모인 범증(范增)이 반대했다. 유방의 참모 진평(陳平)이 범증과 유방이 내통한다는 이간계를 써 넘어간 항우가 모든 권한을 박탈하자 범증이 크게 노하며 한 말에서 유래했다. “천하의 대세는 결정된 것과 같사오니, 전하 스스로 처리하시오소서. 신은 이제 ‘해골을 빌어[乞骸骨]’ 초야에 묻힐까 하나이다....
번쾌는 처음 항우(項羽)의 휘하에 있다가 중용되지 못하자 유방에게 온 뒤 중신 소하(蕭何)의 천거로 대장군이 되어 전장에서 무적이었고 제왕(齊王)에까지 올랐다. 한신이 번쾌의 집을 지날 때 깍듯이 대했으나 집을 나설 때는 ‘살아생전 번쾌와 같은 반열이 되다니’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 열전에 나온다.
☆ 시사상식 / 장수리스크(Longevity...
진(秦)나라 도읍인 함양(咸陽)에 입성한 항우(項羽)는 아방궁에 불을 지르며 시황제 무덤까지 파헤치는 등 잔인한 행동을 일삼았다. 항우가 재물과 미녀들을 손에 넣어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자 한생(韓生)이 함양에 도읍을 정하기를 간언했다. 항우는 한시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출세를 과시하고 싶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부귀해졌는데도 고향에...
진승과 오광의 거사는 군웅(群雄)의 봉기를 촉발하는 역할을 해 항우(項羽)와 유방(劉邦) 등도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출전 사기(史記) 진섭세가(陳涉世家).
☆ 시사상식 / 팁플레이션
팁(tip)과 인플레이션이 결합한 신조어다. 뉴욕 등 글로벌 대도시 식당을 중심으로 팁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탄생했다. 통상 팁은 식대의 15% 안팎이다. 하지만...
한(漢)나라에 복종했던 위나라 왕표(王豹)가 유방(劉邦) 군이 항우의 팽성 공격에 실패하자 한나라의 패색이 짙다고 보고 일신의 안전을 위해 항우 편에 붙으려 했다. 유방은 한신(韓信)에게 왕표를 치라고 명령했다. 출전할 때 역이기가 왕표 군사의 대장이 백직(栢直)이라고 하자 한신이 코웃음치며 한 말에서 유래했다. “그런 녀석은 구상유취[口尙乳臭]야, 백전백승인...
항우(項羽)와 결전을 벌이던 유방(劉邦) 군이 형세가 불리해졌을 때 참모 역이기(酈食其)가 간언한 말에서 유래했다. “지금 항우 군이 오창의 식량창고를 버린 것은 초(楚)의 천운이 다한 증거입니다. 여기서 한(漢) 군이 물러나면 한도 하늘의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이 기회에 오창을 빼앗고 천하에 우리가 초군을 제압하는 형세를 보이면 천하의 인심이 우리에게...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천하를 통일한 뒤 축하연에서 신하들에게 “어떻게 나는 천하를 얻었고 항우는 천하를 잃게 되었는가”라고 물었다. 신하들은 “항우는 의심과 질투심이 많아 공을 세운 자들에게 땅과 성을 주지 않았으나 유방은 반대로 유공자들에게 이익을 나누었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유방은 “신하들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항우(項羽)가 진(秦)나라와 거록(鉅鹿)의 싸움에서 타고 온 배를 가라앉히고 사용하던 솥을 깨뜨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항우는 병사들에게 3일분의 식량을 나누어 주었다. 돌아갈 배도 없고 밥을 지어 먹을 솥마저 없었으므로, 필사적으로 아홉 번을 싸워 진나라 주력부대를 궤멸시켜 항우는 맹주가 되었다. 출전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
☆ 시사상식...
초한(楚漢)의 마지막 전쟁 때 항우(項羽)는 한(漢)나라의 한신(韓信)이 이끄는 부대를 압도했으나 적의 매복에 걸려 처참하게 패배했다. 적군에 포위된 초나라 병사들의 사기를 꺾기 위해 한나라 군사들이 초나라의 노래를 부르자 초나라 병사들이 고향과 가족 생각에 모두 탈영했다. 결국, 항우는 패배를 인정하고 해하가(垓下歌)를 부른 뒤 단신으로 한나라 군사들과...
실제로 유방보다는 항우가 훨씬 더 강했다. 역발산기개세의 거구였던 용장 항우는 한때 40만 대군을 거느릴 정도로 기세등등했던 데 비해 유방은 가짜 유방을 앞세워 항우의 포위망에서 간신히 탈출할 정도로 힘에서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모두가 항우의 천하 제패를 당연시했다.
문학평론가들은 천하를 얻고 천하를 얻지 못한 차이를 용인술에 찾는다. ‘강한 나’가...
원전은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記). 조(趙)나라와 연합해 진(秦)나라를 공격하자고 해도 상관인 송의(宋義)가 ‘두 나라가 싸워 지칠 때 공격해야 한다’며 버티자 항우가 한 말. “우리 군사가 지금 막 패전한 터라 왕께서 앉아 있어도 편안하지 않아[且國兵新破 王坐不安席] 국가의 안위는 오직 이 거사에 달려 있는데도 지금 사졸을 돌보지 아니하고 그...
한(漢)나라 유방(劉邦)과 초(楚)나라 항우(項羽)가 대치 중일 때 항우에게 항복한 위(魏)왕 표(豹)는 한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오지 못하게 진을 쳤다. 한나라 한신(韓信)은 병사들에게 낮에는 큰 소리로 훈련하도록 하고, 밤에는 불을 밝혀 공격하는 것처럼 했다. 이러한 한나라 군대의 작전을 본 위왕 표는 어리석다며 비웃었다. 한신은 비밀리에 군대를 이끌고 뗏목으로...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온다. 한(漢)의 유방(劉邦)과 쟁패전에서 막바지 궁지에 몰린 항우가 20여 기밖에 남지 않은 기마병을 이끌고 오강(烏江)을 건너려 할 때 정장(亭長)이 배를 대고 기다리며 강동(江東)에서 재기를 권유하자 항우가 한 말. “하늘이 나를 버리는데 이 강을 건너서 무엇을 하겠는가? 설사 강동의 부모·형제들이 불쌍히 여겨 나를 왕으로...
초(楚)나라의 항우(項羽)가 3만의 병사를 이끌고 20만의 진(秦)나라와 대진할 때 그는 강을 건너는 배를 가라앉혀 병사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솥을 때려 부숴 3일분의 식량만을 배급했다. “이제 우리는 돌아갈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다, 즉 절대 물러날 곳이 없다, 죽을 각오로 싸워야 한다” 며 독전(督戰)해 승리했다.
☆ 시사상식 / 알 데스코
본래는...
"개혁 통해 더 중간지역 공략해야""조직선거, 통합은 옛말…결사 각오 있어야""유능한 20대와의 논쟁도 당당이 임하겠다""관습과 마주하겠지만, 제 갈 길 가보겠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거록전투에서의 항우처럼 '파부침주(破釜沈舟·결사의 각오로 적과 싸우겠다는 결의)'를 대선 키워드로 삼고, 개혁을 통해...
진(秦) 시황제(始皇帝)가 죽은 뒤 항우(項羽)보다 앞서 왕궁에 들어간 유방(劉邦)이 궁중에 머물려 하자 장량(張良)이 한 간언에서 비롯됐다. “원래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고, 독한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다[忠言逆於耳而利於行 毒藥苦於口而利於病]고 하였습니다. 부디 번쾌(樊噲)의 간언을 들으시옵소서.” 이 말을 들은 유방은 왕궁을 물러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