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 비극 앞에 사라진 웃음, 어떻게 봐야 할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입력 2014-04-3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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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예능 프로그램은 줄줄이 결방되었다. 당연한 일이다. 엄청난 비극 앞에서 웃는다는 것 자체가 어딘지 비상식적인 일로 여겨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최대한 웃음을 피하고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다. 누군가 방송에서 웃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 자체가 죄악시되었다. SBS 뉴스에서 한 기자가 현장에서 웃는 듯한 표정을 보인 것이 커다란 논란거리가 될 정도였다. 물론 SBS 측은 웃은 것이 아니라 웃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어쨌든 이 정도가 되면 웃음은 금기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상 상가에서 웃음을 보이는 건 예의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상가를 나서서도 내내 웃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고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다. 또한 상가를 나서서 웃는다고 해도 그 사람이 상가의 고인을 애도하는 마음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국민적 비극 앞에서 우리는 암묵적으로 웃음을 거세했다. 거기에는 웃었을 때 누군가에게 받을 질타와 비난의 목소리에 대한 두려움과 눈치 보기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른바 공공연하게 얼굴을 내보이는 직업군들은 내내 표정관리를 해야 했다.

이경규의 골프 회동 논란은 이렇게 금기시된 웃음의 또 다른 버전이다. 골프라는 스포츠가 가진 특유의 뉘앙스가 들어 있어 대중 정서가 결코 좋을 수만은 없다. 하지만 그것이 이미 잡혀 있던 약속이었고 어찌 보면 누군가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상이라는 건 상식이다. 그 시간에 우리 중 누군가는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고 있었을 수도 있고, 영화관에서 코미디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을 수도 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특수성 때문이기는 하다. 대중의 사랑을 받아 존재하는 직업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좀더 조심했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웃음을 금기시키고 비극적인 분위기에 동참할 것을 강요하고, 거기서 조금 벗어나면 가차없는 비난을 던지는 건 지나친 집단주의다. 우리는 물론 슬프고, 억장이 무너지고, 분노하지만 또한 그렇다고 우리의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는 어쨌든 다시 살아가야 한다. 다만 잘못된 일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 내야 하고 거기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 희생자와 가족들에 대한 깊은 애도의 마음을 표해야 한다. 그분들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를 푸는 일이 그분들의 생명을 헛되지 않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기 위해 억지로라도 웃어야 할지도 모른다.

웃음을 그저 오락거리로만 바라보는 태도는 지나친 웃음에 대한 폄하다. 물론 웃음에 오락적 기능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웃음은 힘겨운 현실을 살아내게 하는 위로와 위안의 기능도 갖고 있다. 흔히 말하길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 말의 바탕에는 우리네 삶이 결국은 모두 비극적이라는 궁극적 사실이 깔려 있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들이다. 그러니 그 비극 앞에서 무에 웃을 일이 있을 것인가. 그러니 웃음의 문제는 오락거리로 보는 것처럼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물론 이 거대한 비극 앞에서 웃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려고 해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웃음은 그렇게 가볍고 천시되거나 금기시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웃음의 진정한 본질은 어쩌면 애도의 의미까지를 담아내는 비극을 바탕으로 하는 것일 게다. 고인과 희생자들에 대한 충분한 예의와 애도를 표하고 또 이번 참사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일과 동시에 이 비극을 어떻게 하면 끌어안고 또 남은 삶을 살아가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억지로라도 지어내는 웃음 없이 어찌 이 힘겨운 삶을 버텨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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