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을 가다] 느린 손에 고객 줄 길어지고 얼굴 ‘화끈’…그래도 ‘미소’

입력 2014-02-21 10:29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이마트 가양점 체험…손님 앞에선 한치의 실수도 용납 안돼

▲김혜진 산업부 기자는 지난 12일 이마트 가양점에서 캐셔 1일 체험에 나섰다. 손님이 구매한 물건의 바코드를 찍고 계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큰 오산이었다. 쿠폰 지급, 마일리지 적립 등 처리할 업무가 한 둘이 아니었다. 이마트 직원 조끼를 입은 김 기자가 슈퍼바이저의 도움을 받아 16번 계산대에서 계산 업무를 하고 있다. 장세영 기자 photothink@

16번 계산대에 불이 켜지자 5초도 채 안 돼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장바구니 안의 물건을 찍고 계산하면 되는 줄 알았지만 고객 응대부터 계산기 사용까지 대응 매뉴얼이 꽤 많았다. 각 상품의 행사 내용도 파악해야 하며 마일리지 적립, 쿠폰이나 상품권 지급 등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해결해야 한다. 캐셔는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마지막으로 보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기자는 서울시 강서구에 위치한 이마트 가양점을 방문해 대형마트의 일일직원으로 근무했다. 계산대에서 캐셔를, 판매대에서 상품진열을, 마트의 준법관리원까지 짧지만 다양한 업무를 체험하며 현장 곳곳을 살폈다.

제각각 맡은 일은 다르지만 모두 근무시간 내내 손님들의 눈과 매장 내 CCTV에 항상 모니터링된다. 매장에서 지을 수 있는 표정은 ‘미소’뿐. 감정노동자라는 말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평소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이 계속 찍힌다고 생각하니 답답함이 밀려왔다. 전문 기술이 필요하진 않지만 몸과 정신이 고된 노동임은 틀림없다.

◇실수는 ‘금물’, 미소는 ‘필수’= 밸런타인데이 행사를 이틀 앞둔 날. 이마트 가양점은 초콜릿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손님들로 붐볐다. 계산대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줄서 있던 한 구매자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왜 이렇게 느려요! 왜 그런 거냐고요?” 연신 “죄송합니다”라고 말했지만 구매자의 화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고객센터에서 슈퍼바이저(SV)가 사태수습을 위해 계산대로 오고 나서야 다시 업무가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계속 화끈거리고 미소는 사라졌다.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손은 기계적으로 장바구니 속 물건을 하나씩 꺼내 바코드를 찍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는 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다시 미소를 지은 얼굴로 고객과 눈을 맞췄다.

“안녕하십니까? 3만8000원 나왔습니다. 적립카드 있으세요. 없으시고요. 5만원 받았습니다. 거스름돈 1만2000원 여기 있습니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나갔다. 중간에 또 한 차례 실수를 저질러 식은땀이 났지만 처음이라는 말은 이곳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계산대는 손님들이 지갑을 여는 곳이기 때문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십원짜리 하나라도 또는 제품 하나라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산하는 정확함이 필요하다. 동시에 마트에서 시간을 보내는 고객들이 문을 나서면서 응대하는 마지막 직원으로서 연신 미소를 잃지 않아야 했다.

▲김혜진 기자가 이마트 가양점 창고에 들어가 진열 제품을 나르고 있다. 목장갑을 끼고 무게에 상관없이 맡은 제품을 운반해야 했다. 매장에서는 운반한 물건을 진열하면서 목장갑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다. 플라스틱이나 철로 된 상품진열대에 긁혀 손에 수십번 상처가 날 뻔했다. 장세영 기자 photothink@

◇상품 전시도 줄 맞춰 ‘꼼꼼하게’= 박스가 즐비한 창고로 들어서자 추위가 느껴졌다. 목장갑을 끼고 두유 박스를 카트에 실어 날랐다. 2m가량 되는 카트에 가득 채우고 나니 언제 추위를 느꼈느냐는 듯 땀이 났다. 카트를 끌기 위해 뒤에 자리를 잡으니 김재준 이마트 가양점 팀장은 앞으로 나와 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매장에 나오는 순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철장 형태지만 높은 카트인 만큼 통로에서 만나는 고객들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잠시만 비켜 주세요.”, “고객님, 죄송합니다. 지나가겠습니다.”

이날 두유는 행사상품이었다. 문구용 칼을 꺼내 비닐을 가르고 무거운 두유 박스를 고객들의 눈에 잘 띄게 높게 쌓는 것은 물론, 정사각형이 아닌 두유 상자를 정사각형 매대에 줄을 맞춰 빼곡히 채워야 했다. 진열 모양뿐만 아니라 상표가 앞으로 나오도록 통일시켜야 한다. 이어 일반 판매대로 이동해 제품 진열작업을 시작했다. 진열 공간은 제품 크기와 유사해 쉽지 않았다. 특히 맨 아래 칸은 더욱더 고역이었다.

두꺼운 목장갑은 필수다. 진열대는 철 또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에 급히 서두르다 보면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잡곡, 식품 코너 등에서 여러 상품을 진열해 나갈수록 목장갑은 ‘생명장갑’으로 느껴졌다.

매장을 나와 커피 한 잔의 휴식을 취했다. 이른바 특별 대우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 팀장의 무전기에서 “통신 부탁드립니다”라는 호출이 왔다. 다양한 제품과 코너들이 모인 대형마트 특성상 무전기는 직원들의 필수품이다.

▲김혜진 기자가 하얀 가운을 입은 준법사원 박성빈씨와 함께 신선식품 코너에서 상품들이 적절한 온도로 보관되는지 일일이 점검하고 있다. 온도기의 버튼을 누르면 보관온도가 표시돼 확인이 가능하다. 장세영 기자 photothink@

◇마트 준법사원, 혹시 들어보셨나요?= 하얀 가운을 입은 박성빈 준법사원을 따라 신선코너로 향했다. 준법사원은 2004년부터 이마트에서 즉석조리, 신선식품의 보관온도 및 유통기간, 제조시간을 점검하는 직원이다. 신선식품의 경우 매일 2회 냉장·냉동 온도를 측정한다. 현재 이마트의 전국 150여개 점포마다 1명씩 준법업무를 보고 있다.

그는 “닭고기는 영상 2도에서 5도, 소고기는 영하 2도에서 영상 10도까지 제각각 적절한 보관온도가 있다”며 “이렇게 철저히 지켜졌을 때 제품의 유통기한도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유통기한만 지켜진다고 안전한 게 아니었다.

박 준법사원은 “해가 갈수록 관리가 엄격해져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며 “만약 보관 온도를 하나라도 위반했다가 적발되면 7일 영업정지를 받을 수 있는 만큼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제도 시행 1년 가까워져 오는데…복수의결권 도입 기업 2곳뿐 [복수의결권 300일]
  • 불륜 고백→친권 포기서 작성까지…'이혼 예능' 범람의 진짜 문제 [이슈크래커]
  • 전기차 화재 후…75.6% "전기차 구매 망설여진다" [데이터클립]
  • ‘아시아 증시 블랙 먼데이’…살아나는 ‘홍콩 ELS’ 악몽
  • “고금리 탓에 경기회복 지연”…전방위 압박받는 한은
  • 단독 ‘과징금 1628억’ 쿠팡, 공정위 상대 불복 소송 제기
  • 이강인, 두산家 5세와 열애설…파리 데이트 모습까지 포착
  • 뉴진스 뮤비 감독 "어도어, 뒤로 연락해 회유…오늘까지 사과문 올려라"
  • 오늘의 상승종목

  • 09.09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75,056,000
    • +2.1%
    • 이더리움
    • 3,136,000
    • +1.72%
    • 비트코인 캐시
    • 423,300
    • +3.72%
    • 리플
    • 720
    • +0.98%
    • 솔라나
    • 175,000
    • +0.34%
    • 에이다
    • 463
    • +2.21%
    • 이오스
    • 657
    • +4.95%
    • 트론
    • 209
    • +1.46%
    • 스텔라루멘
    • 124
    • +2.48%
    • 비트코인에스브이
    • 61,250
    • +2.51%
    • 체인링크
    • 14,240
    • +2.59%
    • 샌드박스
    • 340
    • +3.34%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