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경제민주화 법안과는 달리 여야가 지난 대선에서 약속한 세비 삭감, 의원연금 폐지, 겸직 금지 등 정치권의 ‘특권 내려놓기’에 대한 입법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현재 국회에 ‘독점거래 및 공정 거래에 관한 규제법안 개정안’만 23건이나 의원 입법으로 발의돼 있는 반면, 정치쇄신 관련 법안들은 지난달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4개월 넘게 계류돼 있는 상태다.
지금도 정치권은 불체포특권과 면책 등 200가지가 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이러니 “선거 때만 을인 척하다 여의도 갑으로 돌아간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3일 경제민주화 입법 중단을 촉구하는 지식인 선언에서 “갑을 관계를 정비하자고 하는데 경제에 개입해 정치 소득을 얻으려는 정치권이 ‘슈퍼 갑’”이라며 “정치권이 가진 슈퍼 갑의 특권을 내려놓지 않으면 경제민주화도 달성될 수 없다”고 했다.
공공 발주에서도 슈퍼 갑 정부의 횡포는 여전하다. 정부나 공공기관, 공기업이 발주한 건설 현장에서 발주기관의 잘못으로 공사가 지연되더라도 간접비 정산이나 계약금 조정 승인을 거부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 여당에서조차 “정부가 아직도 슈퍼 갑으로 남아 있다”며 “공공 발주에서도 시장경제 원리를 벗어나 정부의 지나친 횡포가 있다”(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직격탄이 나오는 실정이다.
정치권부터 모든 활동을 갑을 관계로 보는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 새누리당 김기현 정책위의장은 전날 라디오 방송에서 “을을 지키겠다고 했다가 그것이 지나친 제도가 돼 갑까지 죽고 병, 정은 설 땅도 없어지면… 그럼 대한민국 을만 살아남고 갑하고 병, 정은 죽어야 하는 거 아니잖아요”라고 반문했다.
정치권이 움켜쥔 슈퍼 갑의 특권을 내려놓지 못하면서 민간 분야의 갑을 관계를 바로잡겠다는 건 성급한 욕심은 아닌지 자문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