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보면 죽음이 당연했던 이들이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누구도 포기하지 않고 함께 간다는 새클턴의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의사, 생물학자, 요리사, 사진작가, 물리학자 등 저마다 다른 다양한 구성원들은 모두가 공평하게 일하고, 먹을 것을 사냥하고 분배하며 공동체 의식을 가지면서 한 걸음씩 나아갔다.
최근의 개성공단 사태에 아쉬움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사태에서 정부는 민간기업과 함께 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부는 지난 25일 오후 개성공단 사태 해결을 위한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을 북한 측에 전격 제의했다. 그러나 단서가 문제다. 정부는 북측이 다음날 12시까지 응답하지 않으면 ‘중대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하는 일종의 무리수를 뒀다.
정부는 “시간을 끌어봤자 별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는 위험한 생각이다. 그간 북측의 행보를 볼 때 제의 다음날 정오까지 답을 내놓으라고 다그치는 것은 성사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대화보다는 파국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는다면 이 같은 단호한 조건을 내걸 이유가 없다. 진정 개성 잔류 근로자들의 안전과 식량 등이 문제였다면 더 기다릴 수 있는 자세가 필요했다. 자존심이나 주도권을 잡아야겠다는 결정은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30일 0시30분 개성공단에서 미수금 문제 협의를 위한 7명을 제외한 43명의 잔류인력이 남측으로 넘어왔고, 이제 개성공단은 사실상 폐쇄의 길로 접어들었다.
남은 것은 8년 동안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일터를 잃게 된 입주기업들이다. 이들은 정부지원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입주기업들의 피해액을 1조원으로 보고 있고, 입주기업들은 피해액을 3조~4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입주기업들은 원청업체와 거래가 끊어진데다 납품을 맞추지 못한데 따른 손해배상까지 물어줘야 하는 2차 피해까지 따지면 피해액은 10조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차이가 너무나 크다.
총 123개 기업 중 96개 업체가 경협기금보험에 가입해 있지만, 투자손실액의 90% 범위 내에서 70억원까지만 보험금을 받을 수 있어 실질적인 피해는 불가피하다. 보험금이 나오기 전에 기업은 원자재 대금을 갚지 못해 파산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게다가 경협보험 조차 들지 않은 27개 기업은 절망적인 상황이다.
때문에 입주업체들은 정부가 철수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입주기업들에 대한 보상과 지원책을 먼저 충분히 마련해놓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개성공단의 사실상 폐쇄의 일차적인 책임은 북측에 있지만, 정부는 이에 수반한 입주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노력을 등한시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누구도 좌절하지 않고 협력하며 함께 갈 수 있는 상황을 우리정부는 만들지 못했다.
새클턴의 항해는 실패작였다. 애초에 목표로 삼았던 남극대륙 횡단이 불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클턴과 그의 선원들은 그 이상의 가치를 이뤄냈다. 모든 이들에게 인간의 의지에 대한 경애와 역경을 굴하지 않는 희망을 가져다 줬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사업도 그렇다. 만일 사업장이 10년 만에 폐쇄된다면 안타깝지만 개성공단은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작은 기업들 하나하나를 배려하고 다시 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진심으로 지원해 주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우리기업의 95%를 차지하는 중소기업계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인 차별을 받고 있다는 중소기업계의 마음을 말 뿐이 아닌 행동을 통해 치유해 줄 필요가 있다.
새클턴이 구조선을 이끌고 왔을 때 선원들에게 했던 첫 마디는 “모두 무사한가?”였다. 지금 우리 경제 주체들은 모두 무사한지 반문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