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도피처를 찾는 글로벌 자금이 계속해서 일본 국채로 흘러들고 있다.
외국인들의 일본 국채 보유액이 76조엔, 전체의 8.3%로 사상 최대 규모에 육박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금리를 낮추는 한편 달러와 유로에 대한 엔화 가치를 끌어올려 정부의 환율 개입을 부추긴다.
일본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24일 0.735%로 전날 기록한 9년래 최저치인 0.72%에서 상승했다. 유로·엔 환율은 94.12엔으로 11년만의 최고치를 기록했고, 달러·엔 환율은 78.18엔으로 7주래 최고치에 바짝 다가섰다.
일본 재무성 이재국의 스미 지카히사 심의관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 국채보다 나은 행선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투자자들은 혼란 속에서도 투자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나은 쪽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영국 독일 등 기존 안전자산은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으로 일본과 금리차가 줄어 그다지 매력이 없는 상태다. 10년물 국채 금리는 독일의 경우 올들어 36% 하락해 1.179%를, 미국은 21% 하락해 1.486%로 인플레율보다 낮은 상황이다. 디플레이션 상태인 일본 쪽이 상대적으로 매력적으로 비쳐지는 이유다.
퍼시픽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PIMCO)의 스콧 매더 매니저는 지난 수개월동안 미국 독일 국채에서 일본으로 자금을 옮겼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GIS 글로벌본드펀드는 일본 국채 투자 비율이 3월말 0.1%에서 6월말 시점에는 18%로 확대했다. 반면 독일 국채 비율은 24.8%에서 4.5%에 대폭 축소했다.
일본 엔도 안전자산으로서 인기다. 세계 중앙은행들은 지난 4년간 외환보유고에서 엔화 비중을 22% 늘렸다고 신문은 전했다. 외국 기업들도 사상 최고에 가까운 속도로 사무라이본드(일본 채권시장에서 외국 정부나 기업이 발행하는 엔화 표시 채권)를 발행하고 있다. 올해 사무라이본드 발행 규모는 169억달러로 전년 동기의 기록적인 수준에 다가선 것으로 집계됐다.
성장 둔화와 높은 채무 수준, 장기 초저금리 기조 등 현재 열악한 일본의 상황을 감안하면 의외라는 평가다. 일본의 국가 부채는 1000조엔에 육박한다. 이는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이며, 17개 유로존 회원국의 경제 규모를 합한 것과 맞먹는 규모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5월 일본의 장기국채 신용등급을 ‘A+’로 하향했다. 에스토니아 슬로바키아 중국과 같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일본 국채 금리는 국가 신용등급이 높은 독일 미국을 밑돈다.
콜럼비아매니지먼트의 닉 피퍼 글로벌본드펀드 운용책임자는 “일본 국채는 부득이하게 보유할 수 밖에 없는 것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 국채는 상대적으로 시장이 안정적이어서 수익이 보장된다는 점을 들었다. 또한 90% 이상을 일본인들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위기가 닥쳐도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장점으로 꼽았다.
다만 해외 보유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일본 내에서도 우려하고 있다. 일본의 재정이 악화해 해외 투자자들이 자금을 빼내면 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카히사 심의관은 “기본적으로 일본 투자자들의 투자가 왕성해 해외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도 일본 국채 시장은 쉽게 붕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