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무리한 상황설정과 자극적인 장면들을 통해 줄거리를 끌어나가는 이른바 막장드라마. 안보면 궁금하고 보고나면 찜찜한 이 막장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가 있다. 바로 재벌가와 배다른 형제 그리고 경영권다툼이다. 여기에 재벌가출신 남자와 가난한 집안 여자의 사랑이야기까지 더해지면 더욱 완벽한 ‘막장’으로 변신한다.
우리들은 막장드라마에 큰 흥미를 느끼면서도 현실 속에서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소재로 삼았다고 비난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현실에 없는 선정적 내용을 지어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녀 간의 사랑은 모르겠지만 현실 속에서도 막장 드라마와 비슷한 일이 진행 중이다. 중견 원양 어업체인 동원수산에서다. 창업주인 왕윤국 명예회장의 후처인 박경임 씨는 의붓아들인 왕기철 현 대표이사를 자리에서 몰아내고 자신의 딸에 기업을 넘겨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이미 지난 3월 주주제안을 통해 왕 대표를 해임하고 자신과 왕 명예회장 사이의 막내딸인 왕기미 상무를 대표로 선임하겠다고 나섰다. 당시에는 양측이 한발 물러서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지난 9월 왕기미 상무가 지분을 1.45%로 늘리며 경영권 분쟁 우려를 재점화시켰다.
10월에는 박 씨가 왕 대표를 해임하고 자신 등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임시주총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에도 박 씨가 소송을 취하하며 일단락되기는 했다. 그렇지만 회사 측은 박 씨에 대한 불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변호사에 패소가 예상된다는 조언을 듣고 일단 소송은 포기했겠지만 다른 흉계를 준비하는 게 확실하다는 것이다.
돈 앞에서는 부모, 형제도 없다는 세상이다. 배다른 형제간 경영권 다툼은 이제 막장 측에도 속하지 못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느 막장드라마처럼 동원수산의 경영권 분쟁을 보면서 왠지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