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 혼란으로 국제자금조달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은행들이 외화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금융당국의 외화유동성 추가 확보 지시로 은행들이 앞다퉈 조달시장에 뛰어들고 있지만 시장 반응은 차가운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된 위기가 예상보다 훨씬 깊고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감이 확산되면서 해외에서 글로벌본드 발행이 대부분 막혔다. 특히 미국 뉴욕에서는 투자자들이 10월초까지는 상황을 관망하겠다는 게 대세다.
이에 따라 다음달까지 순차적으로 예정돼 있는 국내 은행과 기관의 글로벌본드 발행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국내 은행들은 미국 뉴욕에서 글로벌본드 발행을 시도했다가 상황이 좋지 않자 순연시켰다.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세계경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면서 “투자은행(IB) 부문 전문가들을 만나보니 채권발행시장이 정말 좋지 않았고 이들은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에만 돈을 차입해줄 수 있다는 말도 했다”며 경색된 자금조달시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김용환 수출입은행장도 “중장기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는 게 맞다”면서 “국내 은행이나 기업뿐만 아니라 현지 기업이나 해외금융기관도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말했다.
글로벌본드 발행이 활발한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도 상황은 비슷했다. A은행의 자금담당 부행장은 “투자자들의 눈과 귀가 미국과 유럽을 향해 있다”면서 “장기채권에 대한 투자를 좀처럼 하려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오일머니가 풍부한 중동계 자금 유치를 위해 국내 은행들이 자금차입을 타진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B은행 자금담당 부행장은 “중동계 은행을 만나서 자금유치를 타진해 봤지만 오히려 자신들에게 투자해 줄 것을 요청할 정도 과거와 다른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오히려 국내 은행들이 한꺼번에 외화조달에 나서면서 자금확보는 하지 못하고 부작용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갑자기 은행들이 한꺼번에 외국에서 돈을 빌려 오려면 그동안 1% 금리만 주면 되던 게 3%대로 올라가게 된다”며 “특히 한국계 은행들이 유럽계 은행보다 리스크도 훨씬 낮고 CDS프리미엄도 더 씨지만 비싼 금리로 외화를 빌려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국내 은행들의 외화유동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오기도 한다. C은행 자금담당 임원은 “금융당국의 외화유동성 추가 확보 지시로 국내 은행들이 (자금조달시장에) 몰리자 오히려 문제가 있는데 숨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문의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막연한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차단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정은보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외화 여유자금을 충분히 확보했고,커미티드라인(마이너스 통장 성격의 단기외화차입)도 약정 기준으로 40억달러를 확보했다”며 “지금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외화유동성도 6월 말에 비해 4배나 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