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이별의 품격

입력 2024-09-1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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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ㆍ시인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자주 흥얼거린 시절이 있었다. 노랫말도 좋고, 가수의 목소리도 청아해서 좋았다.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조금씩 잊혀져 간다”(김광석 노래, 1994). 청춘도 사랑도 다 세월과 더불어 흘러간다. 이별 뒤 겪는 공허감과 쓸쓸한 소회를 드러내는 이 노래의 결구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이다. 우리 안의 애절한 정서를 자극하는 이 노래는 인생이 매일의 이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진실을 일러준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은 또 다른 이별의 방식을 노래한다.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영변에 약산/진달래꽃/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가시는 걸음 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1922) 내가 역겨워 떠나겠다는 연인을 향한 애증이 왜 없겠냐마는 그걸 지그시 누른 채 따나는 님의 앞길에 진달래 꽃잎을 따서 뿌릴 테니 사뿐히 즈려 밟고 가라고 청원한다. 이것은 헤어지는 마당에서조차 안녕을 비는 마음에서 발원한다. 이건 연인을 존중한다는 징표이고, 반드시 따라야 할 예의의 진면목일 테다.

종종 이별 통보에 절망하고 분노한 연인이 상대에게 해를 입히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별을 자기 부정으로 받아들이고 분노와 적대감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폭력으로 분풀이를 하는 행위이다. 연인을 죽이는 것은 가장 나쁜 폭력이다. ‘교제 살인’은 도무지 이해하기 불가능한 사태다. 안타깝고 믿을 수가 없는 까닭에, 어떻게 사랑하던 이를 죽이지, 라고 나는 반문한다. 사랑은 개별 인격자로 만난 두 사람이 한 마음으로 성장하는 일이다. ‘교제 살인’은 성장을 멈춘 인격 장애자가 저지르는 범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누구나 잦은 이별을 겪으며 산다. 사랑하던 연인과 헤어지고, 가족과도 헤어지며, 나이가 들면서 한 시대와도 이별을 한다. 이별은 저마다 마음에 다른 흔적을 남긴다. 가족이나 반려동물과 죽음으로 이별하는 것은 큰 슬픔과 상실감을 낳는다. 이런 이별을 잘 겪어내려면 충분한 애도 기간을 거쳐야 한다. 애도가 충분치 않으면 평생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다. 부디 함께 있을 때 충분히 사랑하라! 헤어질 때는 예의를 갖추고 그의 안녕을 빌어주라! 한때 우리 삶의 일부였던 이와 헤어질 때 잘 보내주는 게 좋은 이별이다. 이별의 품격은 곧 삶의 품격을 드러낸다.

어제까지 마음으로 하나이던 연인과의 격리이고, 오늘 이후의 불가피한 멀어짐이 이별이다. 이별이란 한마디로 관계의 종말이자 그 대상을 잊는 방식이다. “당신이 누군가와 아침에 들른 식당/나는 저녁에 홀로 찾아가 밥을 먹고 돌아오겠죠./당신의 아침은 나의 저녁이 되겠죠./울고 싶은 당신, 울 때 조금 적게 울고/웃고 싶은 당신, 웃을 때 조금 더 크게 웃어요./당신이 웃을 땐/세상도 함께 웃을 테니까요.”(졸시, ‘이별의 노래’) 누구나 사랑할 때 마음을 다한다. 이별할 때도 마음을 다해야 한다. 우리 존재 자체가 삶이란 이별이 쌓아올린 눈부신 탑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별은 삶의 기본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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