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출생아 수가 곤두박질 치고 있는 것은 그간 정부에서 2006년부터 투입한 막대한 저출산 대응 예산이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체감 없는 주먹구구식의 재정 지원이 아니라 일자리·주거·교육 문제 등의 구조적인 시스템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28일 국회예산정책처 및 통계청에 따르면 저출산 대응 예산은 2006년 2조1000억 원에서 2012년 11조1000억 원, 2016년 21조4000억 원 등으로 늘었다.
2019년에는 36조6000억 원, 2021년 44조4000억 원, 2022년 51조7000억 원으로 확대됐다. 2023년(48조2000억 원)을 제외하면 2006~2022년 17년간 저출산 대응 예산은 계속 증가했다.
2023년까지 투입된 저출산 대응 예산은 총 379조8000억 원이다. 저출산 대응 예산은 중앙정부 사업을 기준으로 국비와 지방자치단체 국고보조사업에 대한 매칭 지방비 등이 포함된 수치다. 저출산 및 고령화에 따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저출산ㆍ고령사회기본법이 2005년 제정 이후 2006년 관련 예산이 도입됐다.
저출산 해소를 위해 장기간 천문학적인 액수의 혈세가 투입됐음에도 오히려 출생아 수는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2006년 45만1759명이던 출생아 수는 2017년 30만 명대(35만7771명)로 떨어졌다. 2020년에는 30만 명선(27만2337명)이 붕괴됐고, 2023년에는 23만 명으로 연간 기준 역대 최저를 찍었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1984년 1.74명에서 2018년 0.98명으로 0명대로 떨어졌고 이후 2019년(0.92명), 2020년(0.84명), 2021년(0.81명), 2022년(0.78명), 2023년(0.72명) 등 매년 역대 최저를 경신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38개국) 중 합계출산율이 0명대인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출생아 수와 합계출산율이 예산 증가에 역행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정부 정책 실패라 할 수 있다. 체감 효과가 미미한 백화점식 대책이 중구난방으로 이뤄지면서 저출산 기조를 반전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정부의 재정 투입만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이는 저출산을 야기하는 근본적인 원인과 문제점을 찾아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아이 낳기를 꺼리게 하는 대표적인 이유로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환경을 꼽을 수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이 최근 내놓은 설문조사(직장인 1000명 대상) 결과를 보면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부부 모두의 육아휴직 의무화'(20.1%)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육아 휴직 급여 인상 등 현금성 지원 확대'(18.2%), '임신·출산·육아 휴직 사용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사업주 처벌 강화(16.7%), '근로 시간 단축 등 일·육아 병행 제도 확대'(15.2%) 등이 뒤를 이었다.
대부분의 직장들은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자녀 계획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응답한 것이다.
전문가들도 재정 지원보다는 본질적인 사회·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저출산 정책 기조를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출산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국정 기조, 정부 정책 기조로 다가갈 문제를 사업으로 풀었기 때문"이라며 "구조적인 일자리·주거 문제·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지금 출산율이 낮은 것은 일자리와 노후가 불안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자리와 고용, 노후소득, 부동산 등 경제·사회 전반의 변화를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런 가운데 12일 위촉된 주형환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장관급)이 저출산 해소를 위한 특단의 처방전을 내놓을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기획재정부 1차관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역임한 주 부위원장은 추진력 있게 정책을 밀고 나가고, 업무를 끈질기게 챙겨 경제 관료로서 뛰어난 평가를 받아온 인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