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 당뇨약의 좋은 부작용 ‘노화억제’

입력 2024-02-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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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약이오 아는 게 병’이라는 속담은 약을 먹을 때도 적용되는 것 같다. 의사 처방 없이도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진통제나 항알레르기약의 설명서를 보면 깨알만 한 글씨로 각종 부작용이 나열돼 있다. 이걸 꼼꼼히 읽다 보면 작은 병 고치려다 큰 병 얻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 의사 처방이 있어야만 하는 약의 부작용은 더 심각하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의사에게서 “혈당수치(또는 혈압이나 콜레스테롤수치)가 높아 약을 먹는 게 좋겠다”는 얘기를 들으면 많은 사람이 주저하며 “(수치를 낮추려고) 한번 노력해 보고 다시 검사해 보자”며 복용을 미루고는 한다. 심지어 지속해 복용하는 약물들은 돈을 벌려는 제약회사와 의사의 음모로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비아그라는 알츠하이머병 예방효과

최근 학술지 ‘신경학’에는 비아그라 계열의 발기부전치료제에 대한 흥미로운 결과를 담은 논문이 실렸다. 영국 런던대 연구자들은 발기부전 진단을 받은 40세 이상 환자 26만여 명 가운데 비아그라 계열 약물을 복용한 14만여 명과 복용하지 않은 12만여 명을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복용 그룹이 비복용 그룹 대비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성이 18% 낮은 것을 확인했다. 처방 빈도가 잦을수록 위험성도 낮아져 20회 이상 받은 그룹은 40%나 낮았다.

비아그라는 음경해면체의 혈관을 둘러싼 근육을 이완시킨다. 그 결과 혈관이 늘어나 피가 몰려 음경이 팽창한다. 비아그라가 알츠하이머병 예방 효과가 있는 것 역시 뇌의 혈관 확장을 유발해 혈류가 늘어나면서 산소와 영양분 공급이 원활해진 결과로 보인다. 이런 효과는 두통 등의 부작용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뜻밖의 반전인 셈이다.

부작용이라는 용어의 ‘부’에서 우리는 부정적인 느낌을 받지만(영어로 ‘negative effect’를 떠올릴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한자를 보면 부(否)가 아니라 부(副)다. 이는 부작용의 영어 ‘side effect’에서 좀 더 명확하다. 즉 부작용은 약물의 해로운 작용이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효과로, 때로는 몸에 이로울 수도 있다. 긍정적인 부작용이 크면 이를 작용으로 하는 임상시험을 실시해 약물의 새로운 효능(용도)을 인정받기도 한다.

사실 비아그라도 원래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하던 중 ‘부작용’으로 발기 효과가 나타났고 연구 방향이 바뀌어 이를 작용으로 하는 발기부전치료제로 변신한 것이다. 이번에 발견된 알츠하이머병 억제 부작용이 작용으로 인정된다면 비아그라 계열의 약물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도 승인을 받을 것이다.

최근 비만 치료제 분야에서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GLP-1 모방 약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원래 이 약물은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GLP-1처럼 작용하는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지만, 임상시험에서 상당한 체중감소라는 부작용이 보고됐다. 이를 작용으로 바꾸려는 임상시험이 성공하면서 2014년 비만 치료제로도 시장에 나왔다. 그 뒤 효과와 특히 사용성을 개선한(하루 한 번에서 일주일에 한 번 주사로) 약물이 2021년 출시되면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최근 GLP-1 모방 약물의 또 다른 긍정적인 부작용이 잇달아 보고되고 있다. 신체 전반의 만성 염증을 완화하는 부작용이 그것으로, 지방간과 신장염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와 함께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 같은 신경퇴행성질환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학술지 ‘세포 대사’에는 GLP-1 모방 약물의 전반적인 항염증 효과가 중추신경계, 즉 뇌의 신경계에 작용해 면역반응을 조절함으로써 나타남을 보인 논문이 실렸다. 부작용을 작용으로 변신시킬 이론적 근거가 생긴 셈이다.

약물 부작용의 ‘작용’ 반전 놀라워

몸에 이로운 부작용이 작용으로 공식 인정받기 전에 부작용을 목적으로 약물을 쓰는 사례도 있다. 노화와 장수 분야 권위자인 미국 하버드 의대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는 베스트셀러가 된 저서 ‘노화의 종말’에서 당뇨가 없음에도 당뇨병 치료제인 메트포르민을 하루 1그램 복용한다고 밝혔다. 메트포르민의 부작용 가운데 하나가 ‘노화 억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메트포르민의 노화 억제 작용을 통한 수명 연장 효과를 보는 소규모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지만, 관련 약물로 승인이 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수많은 실험 데이터로 효과를 확신하는 싱클레어 교수는 기다리지 못하고 의사의 처방 권한을 남용한 셈이다.

앞으로 또 어떤 약물에서 긍정적인 부작용이 발견돼 작용으로 바뀌는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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