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상황에서도 대기업들이 계열사 수를 지속적으로 늘리면서 덩치를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현금성 자산은 늘린 반면 투자는 크게 줄였다.
3일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1일 기준 자산총액 상위 10대그룹(민영화 공기업 제외)의 계열사는 478개로 1년 전보다 40개 증가했다.
LG는 37개에서 54개로, 롯데는 47개에서 53개로, 현대중공업은 10개에서 14개로, GS는 59개에서 64개로, 한진은 30개에서 35개로, 두산은 22개에서 27개로 각각 상호출자제한 계열사가 늘었다.
다만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합병 후유증으로 구조조정에 들어가 계열사 수를 53개에서 48개로 줄였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몸집을 줄였던 대기업들은 2005년 이후 경기회복을 틈타 계열사 수를 꾸준히 늘려왔다. 2005년 4월 초 335개이던 10대 그룹의 계열사 수가 4년2개월 만에 143개(42.7%) 늘었다.
이와 함께 기업들의 현금성자산도 늘었다.
금융업을 제외한 유가증권시장의 시가총액 상위 20개사의 올해 1분기 현금성 자산은 33조4145억원으로 지난해 말의 30조8276억원보다 8.39% 증가했다.
반면 10대 그룹의 주요 기업들의 투자는 크게 감소했다. 시총 상위 20개 기업의 '투자활동과 관련한 현금유출액'은 올해 1분기 14조3739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의 19조929억원보다 24.72% 줄었다.
투자활동과 관련한 현금 유출액은 투자를 위해 지출한 자금을 말하는 것으로, 전년 동기보다 줄었다는 것은 투자활동이 그만큼 위축됐다는 의미다.
기업별로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1분기 4조6550억원에서 올해 1분기 2조2090억원으로 52.54% 급감했다. LG전자(-34.82%), 현대중공업업(-76.56%), 현대차(-35.29%), 삼성물산(-77.49%) 등도 투자활동을 위한 현금유출이 크게 줄었다.
이에 대해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대기업들이 실물투자를 하지 않고 지분투자와 M&A 등 자산운용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며 "과거에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재벌로 경제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 부분을 심각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대기업의 설비투자는 작년 하반기 이후 뚜렷한 감소세로 돌아섰으며 최근 1년간 재벌 계열사 증가도 회사설립보다는 지분취득 방식이 많았다.
공정위 관계자는 "최근 대기업집단의 계열사 증가는 실물투자 확대와는 거리가 있다"며 "주로 소규모 계열사를 신규 설립하거나 다른 회사의 지분을 취득해 계열사로 편입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대기업집단이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계열사를 늘리는 것은 신성장사업을 찾기 위한 투자활동으로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위기라고 기업들이 투자활동을 멈출 수 없다"며 "기업들이 회사를 설립하거나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