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공모펀드 패러다임 전환기

입력 2024-01-0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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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전환’은 과학 철학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지배적 이론이나 지식으로 구성된 기성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과의 경쟁 속에 새 패러다임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한다는 의미다. 보통 사회과학 방법론 등에서 다루지만, 일상적 용어로도 쓰인다. 무엇이 어찌 됐든 ‘영원한 건 절대 없다’는 의미 정도로 쓰이는 듯하다.

자본시장에도 패러다임 전환기가 찾아왔다. 공모펀드 열풍이라는 기성 패러다임이 상장지수펀드(ETF)라는 신(新) 패러다임으로 전환 중이다. 공모펀드 설정액은 감소세지만, 2002년 증시에 첫발을 들인 ETF는 20년 만에 순자산 120조 원을 돌파하는 등 승승장구 중이다. 투자자가 직접, 편리하게 투자할 수 있는 ETF가 등장한 이상 굳이 공모펀드를 선택하는 이들이 줄어든 셈이다.

그런데 금융당국은 3일 공모펀드 활성화를 위해 상장공모펀드 도입을 발표했다. 유동성공급자(LP) 제도를 적용해 거래 편의는 높이고, 판매보수 등 비용은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물론 공모펀드 자체의 효용 가치가 있는 것도, 펀드 시장 재편이 필요했던 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ETF로 무게중심이 이동 중인 패러다임 전환기에 과연 이번 발표가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실제 공모펀드 활성화 발표 직후 운용업계 관계자와의 통화에서 “그래서 공모펀드 활성화한다는 내용은 어디 있는 것이냐”는 말을 들었다. 업계와 투자자가 ETF로 몸을 튼 상태에서 상장공모펀드가 무슨 소용이냐는 의미다. 투자자들은 거래가 편리해지면 그간 환매하지 못한 상품들은 환매해버릴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ETF 사업 확장에 열중하던 운용사들의 경쟁과 혼란만 커질 것이란 지적도 있었다.

우리보다 한걸음 앞선 미국 시장도 공모펀드에서 ETF로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졌다. 운용업계 취재원들도 “ETF는 공모펀드의 완벽한 상위호환의 대체체”라고 말한다. 우리 당국도 새 패러다임에 맞춰 ETF에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예컨대 액티브 ETF의 상관계수 규제 완화는 자산운용업계의 소원이다. 액티브 ETF 시장에 중소형운용사가 많이 포진한다는 점에서 대형사 집중적인 시장 재편에도 긍정적이다. 앞으로는 저무는 패러다임을 붙잡기보다 당장 업계와 투자자가 관심 두는 부분에서 직접적인 개선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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