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서울지하철교통약자환승지도’를 만들던 시절 누군가에게 들은 얘기다. 200여 명의 장애, 비장애시민과 함께 만든 지도다. 좋은 아이디어이긴 한데 그 지도 제작과 업데이트에 비용을 투입하려면 예상 이용자 숫자를 가져와야 한다는 뜻이었으리라.
지도를 만들게 된 건 막 지하철에 호기심을 갖게 된 휠체어 타는 딸 때문이었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딸은 휠체어 환승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골탕먹는 경험을 했다. 엘리베이터 안내판이 잘 안 보여서 헤매거나, 비장애인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먼 우회로로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환승할 뿐인데 개찰구를 통과하거나 심지어 역 밖으로 나가서 빙 돌아가야 하는 식이다.
휠체어 탄 딸을 염두에 둔 지도였지만 ‘교통약자환승지도’란 이름을 붙였다. “지하철에서 장애인 많이 못 봤는데 왜 투자해야 하나요?”란 논리 대응용이었다. 한국의 등록장애인 인구 비율은 5%에 불과하지만, WHO(세계보건기구)에서는 15%, 상당수의 서구 국가들은 최소 10% 이상의 인구를 장애인구로 본다.
실제 인구비중이 적지 않음에도 한국에서는 서비스명에 ‘장애인’이 들어가기만 하면 투자 대신 시혜적 복지로 보는 성향이 마뜩치 않았다.
그래서 비슷한 개념을 찾아본 게 ‘교통약자’였다.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 대부분은 어르신이다. 유아차도 엘리베이터가 꼭 필요하다. 노인, 장애인, 영유아동반자, 임산부 등 교통약자는 국토교통부의 집계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30%가 넘는다.
시민들과 함께 만든 교통약자 환승지도는 지하철 내부 표지판을 휠체어 눈높이로 변화시키기도 하고 유사 프로젝트 등장 등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정작 지도 업데이트는 한동안 멈춰 있었다. 다양한 정부기관, 공기업이 운영하는 도시철도 데이터를 민간 단체가 주기적으로 받아서 업데이트하는 건 무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2023년 티머니복지재단의 후원으로 환승지도를 추가 제작할 수 있게 됐다. 우선 서울교통공사와 협업해 엘리베이터를 비롯한 장애인편의시설 업데이트 내역을 받았다.
80여 개의 지하철역을 누비던 지난해 여름 무의로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왔다. “휠체어를 이용하고 있어요. 무의 지하철 환승지도 덕분에 29년 만에 첫 직장을 지하철로 다닐 수 있었어요. 단순히 경로탐색이 아니라 세상이 더 가깝고 넓어지는 기분이었어요.” 연말엔 메일을 받았다. “휠체어를 이용해요. 부산에서 서울로 갈 때 지도를 잘 활용해요. 휠체어 타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데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반응들은 6년 전 “환승지도? 수요가 있나요?”란 질문에 답이 되었다. 지도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겐 외출, 더 나아가 자립의 디딤돌이 된 것이다.
대중교통의 접근성 확보는 교통약자에겐 교육, 노동, 사회참여가 가능해지는 기반이 된다. 지도는 지하철 내부 안내판 디자인을 휠체어 눈높이로도 제작해야 한다는 수요를 일깨우기도 했다. 더 중요한 것은 환승지도 자체를 200여 명의 장애, 비장애 시민들이 함께 만들었다는 점이다. 지도를 보며 휠체어를 타는 이들은 사회가 교통약자의 외출을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느낌을 받았으리라. 여기에서 기존 수요 공급의 법칙은 무색해진다. 이렇게 숨겨진 자립수요를 숫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무의 외에도 소수자들의 자립과 의욕을 일깨우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시도하는 다양한 시민사회단체, 사회적 기업, 소셜벤처들이 있다. 2024년이 밝았다. ‘없는 수요’를 만드는 이들과, 이를 지원하는 다양한 CSR 조직의 건투를 빈다.